[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대금·피리 사이에서 고군분투한 아쟁 살려낸 비결은?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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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정기연주회 ‘정악(正樂)의 멋’ 관악영산회상 연주 장면.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정기연주회 ‘정악(正樂)의 멋’ 관악영산회상 연주 장면.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정기연주회 ‘정악의 멋’ 공연

스피커·악기 마이크 추가 배치

‘이머시브 사운드’ 효과 만점


정악 전곡 감상 기회 드물어

시간·노력 들여야 익숙해져



오랜만에 부산에서 열린 정악(正樂) 전곡 연주회를 다녀왔다.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예술감독 유경조)이 10~11일 이틀간 국립부산국악원 연악당에서 마련한 정기연주회 ‘정악의 멋’ 공연이다. 기악단 정기연주회는 매년 두 번을 개최하면서 상반기는 정악 전곡 연주회로 여는데, ‘정악단’이 없는 부산으로선 아주 귀한 기회인 셈이다.

이날 연주는 ‘별곡’과 ‘관악영산회상’ 두 곡을 중간 휴식 없이 들려주었다. 별곡 연주가 30분 남짓. 관악영산회상은 40분 정도 걸렸다. 전통음악 ‘영산회상’은 아홉 개의 작은 악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인데, 악기 편성에 따라 현악영산회상과 관악영산회상, 음역에 따라 평조회상으로 구분한다. 현악영산회상은 거문고가 중심이 되어 음악을 이끌기 때문에 ‘거문고회상’이라고도 한다. 별곡은 현악영산회상에서 악곡 몇 곡을 더하거나 빼서 ‘별스럽게 연주한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관악영산회상은 향피리가 주선율을 연주하기 때문에 현악기 중심의 현악영산회상에 비해 보다 씩씩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한데, 정악 전곡 연주에 익숙지 않은 일부 관객은 힘겨운 표정이 역력했다. 국악이 좋아서 공연장을 찾았겠지만, 전통음악의 전곡 감상 기회가 흔치 않다 보니 한 곡당 30~40분에 이르는 곡을 감상하는 게 쉽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을 나서는데 어떤 관객이 “아이고, 보는 것도 되다(힘들다)!”라는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연주자 입장에서도 정악 공연은 만만찮다. 전곡을 암보(악보를 외워 기억함)로 연주하는 데다 어떤 악기는 40분 내내 연주하느라 팔을 내리지도 못한다. 지휘자도 없어 연주자들은 합주 내내 장구 반주자의 장단과 호흡을 느끼면서 박자를 맞춰야 한다. 유경조 예술감독이 “즐겁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비통하지 않은 감정 절제가 정악의 특징”이라면서 “정악과 친해지려면 사람을 사귀는 것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더니 그제야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정기연주회 ‘정악(正樂)의 멋’ 별곡 연주 장면.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정기연주회 ‘정악(正樂)의 멋’ 별곡 연주 장면.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정악 전곡 연주 감상 기회 말고도 이번 공연을 주목한 이유는 또 있다. 정악의 온전한 멋을 전달하기 위한 부산국악원의 남다른 노력이다. 실감 음향 혹은 3D 음향이라고 하는 ‘이머시브 사운드’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말이 좀 어려운데, 조선시대 사랑방에 앉아서 음악을 듣던 그 방식 그대로 극장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공연장 천장과 바닥 등 24개 포인트에 스피커를 추가로 심은 데 이어 악기마다 마이크를 보충했으며, 무대와 객석을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음향감독이 일일이 데시벨을 조절했다고 한다.

실제 사랑방에서 극장으로 연주 공간이 확대되고 마이크로 확성을 하더라도 한계는 분명했다. 거문고만 하더라도 전통 합주에선 가장 중시되었지만, 국악관현악단 체제로 변하면서 거문고의 독창적인 소리가 전혀 살아나지 못해 위상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정기연주회 ‘정악(正樂)의 멋’ 별곡을 연주 중인 거문고.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 정기연주회 ‘정악(正樂)의 멋’ 별곡을 연주 중인 거문고.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그런데 이번에 이머시브 사운드라고 하는 특별한 장치를 통해 평소라면 객석에선 듣기 어려웠던 거문고의 전성(줄을 구르는 주법)과 퇴성(밀었던 줄을 흘려내는 것)은 물론이고 자출성(술대를 쓰지 않고 괘를 다루는 왼손으로 소리를 내는 법) 같은 연주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관악영산회상에서도 대부분 관악들(대금, 피리)이 죽어라 하고 악기를 불기 때문에 현악기인 아쟁 소리는 정확히 듣기 어려운데, 이번에는 그 소리를 뚫고 객석까지 나왔다.

이런 미세한 소리 구분은 거의 전문가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 역시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야 했지만, 이런 시도 하나하나가 우리 전통을 지켜 나가려는 소중한 과정이다. 비록 힘들다고 하면서도 우리 국악을 들으러 오는 관객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정악의 멋을 새롭게 즐기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 부산국악원에 박수를 보낸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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