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못의 대화/김예강(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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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략)

그 길에 들자 내가 달려온 속도를 잃고

나는 멈춰 섰지요

사각의 액자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길에 밀착해서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다음의 생인지도 모르겠어요

햇살 속에서 내가 벗어놓은 옷들은

깃털처럼 날렸어요 누가 나눠 가진 걸까요

손가락 끝은 늘 간지럽습니다

숲을 찢고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주먹 쥔 손을 펴봅니다 하얀 목련이 주먹을 쥐고 서있다니요

- 시집 〈가설정원〉(2023) 중에서


삼월도 중순. 봄 길을 걷다보면 하얀 목련들이 펑, 펑 터진 채 있다. 목련은 북쪽을 향해 핀다. 사대부들이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핀다 해서 충성스런 꽃이라 불렀다지만, 글쎄다. 많은 목련들이 북쪽 가지가 더 발달하고 꽃송이도 더 달린다고는 한다. 시인은 봄을 맞아 ‘손가락 끝’이 ‘간지럽다’. 시인은 ‘주먹 쥔 손을 펴’ 본다. 그때 눈앞에 선 하얀 목련. ‘주먹을 쥔 채 서’ 있다. 아름다운 대비다. 시를 읽고 사무실 창밖의 목련을 바라보니, 정말 목련이 흰 주먹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흰 주먹들마다 걸어가서 손바닥을 펴고 나는 보! 하고 외치고 싶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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