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의거’ 총탄에 쓰러진 조현대 열사 유족 찾는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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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서 “부정 선거 규탄” 거리로
경찰 총탄에 부상, 1년 뒤 숨져
유해·유족 행방 여전히 묘연
부산 영도구 공동묘지 안치 추정
동삼동 마지막 거처 찾기에 희망

조현대 열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주요 기사로 알린 <부산일보> 1961년 3월 15일 자 3면 보도. 조현대 열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주요 기사로 알린 <부산일보> 1961년 3월 15일 자 3면 보도.

경남 창원시 국립 3·15 민주묘지에는 조현대 열사의 비석과 묘가 있다. 그러나 유해가 없는 빈 무덤이다. 2020년 4·19혁명 유공자로 인정돼 내려진 조 열사의 ‘건국포장’도 여태껏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포장을 받아 갈 유족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정선거에 맞서 민주화의 불꽃을 태웠던 청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61년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서의 기록이 그의 마지막 자취다.

1960년 3월 15일, 조 열사는 정·부통령선거의 부정행위를 규탄하며 거리로 나섰다가 당시 경남 마산시 북마산파출소 앞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오른쪽 가슴을 맞았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당시 19~22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기소 중지 처분을 받고 풀려난 조 열사는 파출소 인근 황의원에서 1개월가량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늘어나는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했고, 1961년 2월 25일 결국 다친 몸을 이끌고 부산 영도구의 친척 집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몸은 극도로 악화됐고, 3일 후인 2월 28일 피를 토한 뒤 숨을 거뒀다. 모친 박연순(당시 47세) 씨와 형 태근(29세)·동생 현식(13세) 씨 등이 고인을 영도구 동삼동의 공동묘지에 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부산일보〉 1961년 3월 15일 자에 크게 보도됐다.


경남 창원시 국립 3·15 민주묘지에 마련된 조 열사 임시 묘소. 조 열사의 유해는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 3·15 민주묘지 제공 경남 창원시 국립 3·15 민주묘지에 마련된 조 열사 임시 묘소. 조 열사의 유해는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 3·15 민주묘지 제공

조 열사를 다룬 기록은 여기까지다. 올해로 3·15 의거 63주년을 맞았지만, 조 열사의 유해와 유족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조 열사의 행적을 입증할 자료가 없어 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의 본적은 경남 마산시 상남동이며, 사망 당시 모친이 북마산 제비산 동쪽 자락의 한 양로원에서 식모 생활을 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3·15의거기념사업회 등은 그간 조 열사의 흔적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조 열사 일가가 속했을 가능성이 큰 함안 조씨 문중 족보를 확인하고, 마산 중부경찰서 정보과와 상남동 일대를 탐문하기도 했다. 주소지의 제적부, 호적도 살폈지만 조 씨 일가의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임종금 진실화해위 3·15의거과 조사1팀장은 “최근 3년간 3·15 관련 기록을 보면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봐 본적이나 가족 이름을 바꿔 진술한 경우도 종종 있다. 조 열사도 그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현재 관련 유공자 중 유일하게 조 열사의 유족만 확인되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조 열사의 유족을 찾을 경우 유해 매장 위치, 3·15의거에 대한 새로운 사실 등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조 열사의 동생 현식 씨는 아직 70대 중반의 나이로 추정돼 생존 가능성이 크다.

현재 실낱같은 희망은 조 열사가 마지막으로 찾았던 영도구 동삼동의 거처를 찾는 것이다. 1961년 조 열사가 숨을 거두기 직전 찾아간 곳이라면 꽤 가까운 친척 집이었거나 알려지지 않은 근거지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60여 년 전 일인데다 현장 범위가 넓어 주민 제보 없이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유해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동삼동 중리산 일대는 군사구역 내 지뢰 매설 지역으로 꼽혀 섣불리 확인 작업에 나설 수 없다.

다행히 진실화해위원회는 최근 한 향토사학자로부터 조 열사 모친이 일했던 마산의 양로원 위치를 전해 들어 확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과거 영도구에서 조 열사 묘를 찾아 나섰던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은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국가의 잘못, 사회의 외면으로 희생됐다면 마땅히 모두가 나서 기록을 찾아야 한다”면서 “다행히 영도는 동마다 주민 모임이 잘돼 있어 수소문한다면 조 열사의 마지막 거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열사 지인·친척에 대한 제보는 부산일보(010-4360-5188) 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3·15의거과(055-246-8626~8)로 하면 된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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