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 백스테이지] ‘부산 여자’와 ‘서울 남자’, 너무 다른 연인의 ‘현실 연애’ 그렸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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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말다툼으로 시작하는 연극
서로 달라도 닮아가는 연인 그려
2030 공감 끌어내는 솔직한 내용
4월 2일까지 광안리 소극장 공연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에서 최우진 역을 맡은 이도영(왼쪽), 안채영을 연기하는 이설 배우.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에서 최우진 역을 맡은 이도영(왼쪽), 안채영을 연기하는 이설 배우. 예술은공유다 제공

여자와 남자가 객석에 앉아있다. 다른 관객처럼 연극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평범한 연인 같은 그들이 갑자기 일어선다. 공연이 시작되자 그 남자와 여자가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욕설을 하고 물건을 던지며 싸운다. 남달라 보여도 꾸준히 지켜보면 결코 특별하진 않다. 어쩌면 가장 보통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게 펼쳐진다.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는 결혼을 준비하는 연인의 강렬한 말다툼으로 시작한다. ‘부산 여자’ 안채영(이설 분)과 ‘서울 남자’ 최우진(이도영 분)은 서로를 할퀴는 말을 솔직하게 퍼붓는다. 대화를 이어갈수록 집안 소득, 정치 성향, 성적 취향, 성격 등이 다름을 관객은 알게 된다. 남자는 ‘상어’라는 실질적 대상, 여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으로 꼽을 만큼 둘은 다르다.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그래서인지 서로를 찌르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그들의 사랑도 은근히 드러난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해 욕설과 폭언으로 대립해도 결국 닮아가는 연인의 모습을 그린다. 연극은 중반부 이후 그들이 처음 만난 4년 전으로 시점을 옮긴다. 그때는 많은 게 달라도 서로에게 이끌렸다. 시간이 지나 다름이 싸움으로 이어졌지만, 풋풋했던 사랑 역시 지금껏 두터워졌다.

2030세대 관객들은 솔직한 연인의 모습을 잘 그려내 몰입감이 높았다고 했다. 한 관객은 “로맨틱한 모습이 아닌 현실적인 측면을 부각한 게 좋았다”며 “직설적 표현에 놀라긴 했지만,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배우들 대사와 연기로 지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객은 “중요한 순간에 배우들이 상대방 눈을 쳐다보지 않거나 깜빡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어느 상황이든 끝까지 서로를 응시하면서 순간을 회피하려 하지 않아 감정이 잘 느껴졌다”고 했다.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소극장 곳곳을 자연스럽게 활용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관객이 오가는 극장 입구는 연극에서 남자의 집 현관문으로 쓰인다. 주인공 둘이 차례로 그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연극이 시작된다. 주인공들은 자기감정에 솔직해지는 순간 이 문을 오간다. 화가 끝까지 나거나 치킨을 시킬 만큼 배가 고파도 통로를 오간다. 여기에 무대를 둘러싼 ‘ㄷ’ 모양 객석 구조는 주인공들과 더 가까운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만 ‘부산 여자’와 ‘서울 남자’로 캐릭터를 설정하면서 지역적 특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지역과 부모 직업 등으로 두 주인공 특징을 보여주려 했지만, 굳이 부산과 서울로 구별한 이유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반응이 있다. 남자가 대학 때문에 부산에 살게 된 사연, 특정 호텔과 번화가 언급, 광안리 바다에 대한 평가 정도만 다뤄진 느낌이다.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연극 ‘나는 쇼팽의 녹턴 B플랫 단조에 순결을 잃었다’ 한 장면. 예술은공유다 제공

이번 연극은 영국 작가 세바스찬 가드너(Sebastian Gardner) 데뷔작을 각색해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한·영 수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 ‘예술은공유다(Adapter theater)’와 영국 ‘페이퍼 머그 시어터(Paper mug theatre)’ 아이러브스테이지(Ilovestage)’가 공동 제작했다. 부산문화재단과 영국예술위원회 등이 지원했다.

올해 부산연극제 예술감독인 김가영 나다소극장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어리숙하고 순수한 상류층인 ‘최우진’을 연기한 이도영은 지난해 대한민국 신진연출가전 우수 연기상을 받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 배우다. 거침없이 당찬 ‘안채영’ 역을 맡은 이설 배우는 부산 연극계와 드라마 등에서 꾸준히 활약했다. 연극은 이달 1일 부산에서 초연했다. 광안리 바다와 맞닿은 수영구 광안동 ‘어댑터 플레이스’에서 다음 달 2일까지 계속된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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