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 (210) 혼란한 현실 속 예술가의 사명, 요르그 임멘도르프 ‘Malerauto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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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보편적인 것이다. 이런 말은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은 물질 이상의 어떤 것으로써, 그것은 우리 정신에 관한 것이다.” -2003년 요르그 임멘도르프-

요르그 임멘도르프(1945~2007)는 독일 출생의 작가이자 조각가, 무대디자이너이다. 안젤름 키퍼, 게오르크 바젤리츠와 함께 독일 신표현주의를 이끌었으며 20세기 독일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임멘도르프는 1963년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대학교에 진학해 테오 오토에게 디자인을 사사하다 미술로 전향했다. 1964년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요셉 보이스의 지도를 받았다.

임멘도르프는 재학 시절 급진적인 네오다다이즘 활동과 좌파적인 정치활동을 벌이다 퇴학을 당했다. 이후 1969년부터 1980년까지 공립학교 미술 교사로 일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제작했는데, 독특한 작품 세계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1988년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임멘도르프는 왼손 대신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며 화풍의 변화를 도모하고, 신체적 어려움에도 작업을 이어갔다. 1989년 프랑크푸르트의 슈타델슐레, 1996년에는 자신을 퇴학시킨 모교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대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임멘도르프는 2007년 루게릭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요셉 보이스를 사사한 임멘도르프는 ‘예술이 사회에 더욱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임멘도르프는 작고하는 날까지 정치적 문제와 사회 속 개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는 전통 아카데미 미술에 도전하는 역동적인 성향을 보였다.

전후 독일인들이 겪어야 했던 정체성의 혼란, 위기의식 등에 대한 메시지를 은유적이면서도 극단적인 그래픽으로 표현한 임멘도르프는 특유의 상징주의적 이미지를 큰 캔버스에 가득 채워 넣었다.

임멘도르프 작품의 변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황폐해진 독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1기, 독일 통일 이후 예술의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2기, 루게릭병 발병 후 오른손으로 작품을 그린 시기로 화풍 변화와 함께 보다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자 한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Malerauto I’은 음울한 듯 화려한 색채와 힘찬 붓질의 조화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차를 타고 있는 화공들’이라는 제목을 지닌 작품으로, 전쟁에 나가기 위해 군용차에 탑승한 화공들은 원숭이의 형상을 띈 반인반수로 묘사되어 있다. 임멘도르프의 타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원숭이는 작가 자신에 대한 상징적 은유로 알려져 있다.

임멘도르프는 원숭이를 통해 인간이자 예술가, 현명하면서도 어리석은 자신의 양면성을 표현했다. 작품이 제작된 1989년은 동독과 서독의 통일로 정치 사회적인 격변을 마주한 시기이다. 이렇듯 혼란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의지와 사명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김경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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