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김영삼이 본 세계는 ‘기댈 언덕이 없는’ 냉엄한 세계였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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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세계를 보다 /김영삼 지음·이동수 편저

1964년 미 국무부 초청 미국·유럽 등 탐방
선진국 잘 사는 이유는 ‘대립’ 아닌 ‘단결’
이동수 편저자, 당시 단행본 새롭게 펴내

<YS 세계를 보다> 표지. <YS 세계를 보다> 표지.

<YS 세계를 보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64년 출간한 단행본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120일간의 세계여행기>를 다시 펴낸 책이다. 원작은 세로쓰기에 한자가 많고, 표현이 낡은 경우가 제법 있었다. 이동수 편저자는 그런 단어와 문장들을 요즘 시대에 맞게 다듬고 고쳤다. 하지만 최대한 원문의 감정을 살렸다.

1964년 6월, 민정당 대변인이었던 김영삼 의원은 미국 국무부의 초청으로 약 4개월간 미국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방문한 뒤 그곳에서 얻은 견문을 책으로 펴냈다. 당시 그는 3선 국회의원이었는데, 놀랍게도 나이는 만 서른다섯에 불과했다. 책에는 1인당 GDP가 106달러에 불과한, 세계의 변방에 머물고 있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의 청년 정치인이 품었던 선진국을 향한 부러움과 조국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개인적 야망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60년 전 ‘김영삼이 본 세계’는 오늘날과 같이 ‘기댈 언덕이 없는’ 냉엄한 세계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된 지 10여 년, 세계 각국은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각축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참화에 더해 독재와 쿠데타의 정치 혼란으로 후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유럽보다 잘 살고, 유럽은 일본보다, 일본은 한국보다 잘 살았다. 그들이 잘 사는 이유는 ‘기적’이 아니라 ‘노력’ 때문이며, 서로 ‘대립’하면서도 ‘단결’하는 원리가 사회 발전의 원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김영삼은 보았다. 이미 국회의원 3선의 야당 대변인으로서 정계의 한복판에 있던 김영삼은, 이 여행을 통해 민주주의와 사회 발전에 대한 자신의 정치철학을 확고히 구축하게 됐다.

청년 정치인 김영삼은 자유 진영의 여러 나라를 둘러본 뒤 “세계는 이제 이념의 시대를 지나 실리 제일주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서독과 동독의 경쟁은 이미 경제력에서 판가름 났고, 공산 진영에서 교조주의를 지키려 하는 중국도 실리를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소련은 이미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김영삼은 “우리가 방향만 잘 잡으면 2~3년 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며 경제력을 기르는 데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책은 오늘날의 세계와 1960년대의 세계를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김 의원은 1964년 8월 27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이후 슬픔에 빠진 미국인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해 6월과 8월 워싱턴 D.C를 두 번 방문했는데 케네디의 묘소에 항상 수천 명의 참배객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쿠바 사태를 해결하고 흑백 평등을 위한 민권법을 제정하는 등 자유 진영의 리더로 촉망받았던 케네디가 여전히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음을 본다.

영국에서는 보수적 근엄함과 비틀스의 파격이 공존하는 런던 거리의 풍경을 보게 된다. 영국에서는 대학 식당까지 넥타이를 매고 들어갈 만큼 전통과 형식을 중시했다. 전통과 권위와 근면이 지배하는 런던 한복판에 비틀스를 ‘추앙’하는 수많은 청춘 남녀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고 런던과 비틀스는 이질적인 존재인 것 같다고 평한다.

편저자인 이동수는 1988년생으로 1928년생인 원저자 김영삼과 60살 차이가 난다. 청년정치크루를 결성하는 등 일찌감치 청년 세대의 정치적 권리와 책임을 촉구해 온 이동수 작가는, 진영 대결과 양극화로 치닫는 현 세태를 엄중히 경고한다. 이념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사회의 부조리를 걷어내기 위해 노력한 진정한 개혁가로서, 다시 김영삼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영삼 지음/이동수 편저/미디어민/260쪽/1만 8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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