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는 연기, 쌓으니 맞잡은 손이 되다 [전시를 듣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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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용 작가 개인전 ‘36.5℃’
내달 1일까지 아트스페이스 링크
디지털로 연기 이미지 쌓아 올려
기도하는 손 등 인체 형상 만들어
“미세한 떨림, 따뜻한 감정 표현”

정안용 '사랑'. 작가 제공 정안용 '사랑'. 작가 제공

화가에게 물감이 있다면 그에게는 연기가 있다.

정안용 개인전 ‘36.5℃’가 부산 수영구 남천동 아트스페이스 링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정 작가는 “학생 때부터 나타나고 사라지는 형태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돌이나 나무에 조형학적으로 조각을 했는데, 가장 이상적인 것이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기는 눈에 보이지만 잡히지 않고 대부분이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 연기를 조각으로 옮기기 위해 정 작가는 연기 사진을 찍어 연구를 시작했다. 향, 나무, 종이, 천 등 재료에 따라 태웠을 때 나오는 연기 형태가 달랐다.

“향은 직선이나 곡선 연기가 많이 나오고, 나무나 천은 매연에 가까운 뿌연 연기가 나와요. 연기 이미지를 디지털로 작업하니 조형 작업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형태가 나왔어요.” 정 작가는 연기 이미지를 계속 쌓으면 하얗게 되면서 덩어리감이 생긴다고 했다.

정안용 작가가 연기 이미지를 이용한 작품 '몸' 앞에 서 있다. 오금아 기자 정안용 작가가 연기 이미지를 이용한 작품 '몸' 앞에 서 있다. 오금아 기자

정 작가에게 연기는 ‘작업 재료’이다. 그는 만 개 이상의 연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선과 면, 탁한 면과 맑은 면 등 각각의 연기가 하나의 물감 역할을 하는 거죠.” 이번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은 연기 이미지 800여 장을 붙여서(쌓아서) 만든 것이다.

마주 잡고, 깍지를 끼고, 기도하는 다양한 손의 모습이 디아섹 액자의 검은 바탕에서 입체적으로 피어오른다. 정 작가는 “조각을 전공해서 그런지 연기가 ‘매스감’이 있게 표현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인물 작업에서 입체감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인간의 신체와 연기를 연결해서 작업한 이유에 대해 정 작가는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나이가 더 들면 몸이 산화되는 느낌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게 연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 개인전에서 특히 손에 집중한 것은, 손이 닿았을 때의 미세한 떨림이나 따뜻한 감정 등을 연기로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36.5℃’, 인간의 체온을 의미해요.”

정안용 '소유한다는 것'. 연기 작업을 종이 위에 프린트하면 수채화 같은 느낌이 난다. 작가 제공 정안용 '소유한다는 것'. 연기 작업을 종이 위에 프린트하면 수채화 같은 느낌이 난다. 작가 제공

‘설렘’ ‘약속’ ‘사랑’ ‘기도’ 등 손 시리즈 외에도 자연을 표현한 ‘사라지는 것들에 관해’도 전시되어 있다. “디지털로 연기에 색을 올리면 수채화처럼 번지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계절을 표현한 작품으로 13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까지 7장을 완성했어요.”

정 작가의 연기 작업은 대선주조 ‘그리워예’ 라벨 디자인(2013년), 삼성 스마트폰 테마 디자인(2016년), 포르쉐(2022년) 등 기업 컬래버레이션에도 사용됐다.

정안용 개인전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정안용 개인전 전시 전경. 오금아 기자

연기 작업이 주를 이룬 전시장에서 사과나무 조각이 눈에 띈다. 정 작가가 자기 왼손을 본 따 만든 작품 ‘예술가의 손’이다. “10년 넘게 작업을 했는데 좋은 예술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죠. 어깨 위치에 올려둔 구슬은 예술에 대한 나의 고민이라고 보시면 돼요.” 정안용 개인전 ‘36.5℃’는 4월 1일까지 사전예약제로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트스페이스 링크(수영로 371 3층)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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