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관문의 섬' 가덕도, 비상하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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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부산은 나라 지키는 관문도시
부산진 다대진 가덕진 천성진…
가덕도는 관문도시 부산의 관문

부산신항에다 가덕신공항까지
교통 요충지로서 세계로 비상
남부권 관문공항 자리 잡아야

국토교통부의 가덕신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 중간 보고회가 14일 열렸다. 사진은 이날 가덕도 모습으로, 왼쪽 봉우리가 국수봉이고 앞쪽 포구는 새바지항, 뒤쪽은 대항항이다. 김종진 기자 kjj1761@ 국토교통부의 가덕신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 중간 보고회가 14일 열렸다. 사진은 이날 가덕도 모습으로, 왼쪽 봉우리가 국수봉이고 앞쪽 포구는 새바지항, 뒤쪽은 대항항이다. 김종진 기자 kjj1761@

가덕도에 가려면 하단에서 환승해야 한다. 을숙도 지나 명지 녹산 건너 부산신항을 따라가면 그 섬에 닿는다. 낙동강 하구에 떠 있는 섬이지만 뭍과 가까운 대개의 섬이 그렇듯 개발 바람으로 이미 육지화된 지 오래다. 진해 용원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던 기억은 아스라한 추억이 되었고, 가덕도는 부산신항과 거가대교가 들어서면서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가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이 되었다.

가덕도가 내려다보이면 ‘벌써 한국이구나’ 생각이 든다. 후쿠오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다 대마도가 보이면 절반쯤은 왔고, 가덕도와 낙동강 하구의 섬들이 점점이 눈에 들어오면 부산이고 한국이다. 제주 가는 것보다 더 짧은 비행 거리에 일본이 있고 보면 부산과 일본, 특히 규슈는 만만치 않은 관계라는 사실을 대한해협의 하늘 위에서 실감하게 된다. 가덕도는 국경의 섬이자 경계의 섬인 것이다.

부산이라는 이름 앞에 여러 수식어가 붙지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관문 도시일 터이다. 관문(關門)은 국경이나 요새 따위에 드나들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길목을 뜻한다. 부산을 지켜 온 부산진성 앞 돌기둥에는 동쪽에 ‘남요인후’(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다), 서쪽에 ‘서문쇄약’(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이라는 글귀를 각각 새겼다. 관문도시 부산의 진면목이 거기에 있다.

그 부산진성의 전방에 다대포의 다대진성, 그 앞에 가덕도의 가덕진성과 천성진성이 있다. 특히 천성진성은 근래 부산의 유일무이한 이순신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시민의 날인 10월 5일은 부산포해전 승전일인데, 부산포해전 승리를 위해 이순신 장군이 천성진을 적극 활용했다는 게 부산시립박물관의 주장이다. 가덕도 연대봉 봉수대는 대마도 방면 왜구를 감시하던 곳이다. 가덕도는 부산의 최전방, 한국의 지오피(GOP)였던 셈이다.

가덕도는 왜구와 일본군의 수중에도 떨어질 정도로 경계를 오갔다. 눌차왜성을 비롯하여 임란 때는 왜군에 가장 오래 점령됐고, 수시로 왜구의 소굴로 전락했다. 개항 이후로는 일제가 러일전쟁에 대비해 1905년 외양포에 진해만요새사령부와 포병대대를 설치하는가 하면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미군의 한반도 상륙에 대비해 새바지항에 인공동굴 여러 개를 파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관문 노릇을 했다.

가덕도는 북단에 부산신항의 남컨테이너터미널이 자리 잡으면서 섬의 면모를 일신했고, 터미널은 진해만 쪽으로 계속 매립하여 확장되는 추세다. 남단에는 가덕신공항이 2024년 말 착공하여 2029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가 14일 개최한 가덕신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 중간 보고회에 따르면 육·해상 매립 방식으로 가덕신공항이 추진된다. 가덕도는 이제 남에는 가덕신공항, 북에는 부산신항, 가운데는 거가대교가 지나 육로와 해로에다 하늘길까지 갖춘 교통 요충지가 되었다.

공항 배치안을 보면 가덕도 남단에서 잘록한 모양으로 마주 보는 대항항과 새바지항은 건드리지 않고 그 아래 국수봉(265m)과 남산(188m)을 절취해 평지로 만들고 해상을 매립하는 방식으로 공항이 들어선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발트함대의 남진을 방어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포진지를 비롯한 외양포 마을과 국수봉 쪽의 화약고·관측소·산악 보루 등 유적지는 사라지게 된다. 동백군락지와 산림도 훼손 위기를 맞는다.

부산 시민의 오랜 염원에 힘입어 착공과 개항 시기를 못 박은 가덕신공항의 정부 로드맵이 마침내 나왔다. 2030부산엑스포 유치 열기가 갈수록 고조되는 데다 4월 2일부터 시작되는 국제박람회기구(BIE)의 부산 현지 실사를 앞두고 신공항의 개항 시기를 2029년 말로 조정한 것이다. 하지만 환경단체 등 다른 시민사회 쪽에서는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분명하고도 꾸준하게 내 온 것도 사실이다.

가덕신공항이 부산 재도약의 모멘텀이자 지역 균형발전의 상징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으면서 개발과 보존 사이에 타협점을 찾기 어려워진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지역사회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여야를 가리지 않는 정치권의 단합된 노력으로 가덕신공항 로드맵이 나온 만큼 신공항이 ‘24시간 안전한 남부권 관문공항’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할 뿐이다.

부산의 최남단 가덕도는 봄이 오는 길목이다.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낸 올봄 초입에 찾은 가덕도는 따뜻한 남쪽 나라였다. 봄꽃이 앞다퉈 피는 가운데 뭍의 바닷가처럼 섬의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서 상춘객을 유혹했다. 관문도시 부산의 관문인 가덕도가 이제 비상한 시절을 맞았다. 경계를 넘어 세계로 비상할 가덕도가 교통의 요충을 넘어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시구처럼 세계와 소통하는 ‘그 섬’이었으면 한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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