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학수의 문화풍경] 신운 예술단의 중국 전통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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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 철학과 교수

기교와 서사를 창의적으로 복원하는 일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파괴하는 모순의 과제
창조적 계승을 훌륭하게 성취해 내려면
우리 무용계도 고유한 방식 찾아 분발해야

중국 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은 정비(正妃)인 여후(呂后)의 아들 영(盈)을 폐하고, 총비(寵妃) 척부인(戚夫人)의 아들 여의(如意)를 태자로 옹립하려고 했다. 여후는 척부인에게 극도의 분노를 품었다. 고조가 죽자 여후는 척부인의 손발을 자르고, 눈알을 빼고, 귀에 불길을 넣고, 벙어리로 만드는 약을 먹이고, 척부인을 돼지우리에 살게 하고, “인간 돼지”라고 부르도록 명령했다.

척부인은 ‘교수절요지무(翹袖折腰之舞)’을 잘 추었다고 한다. 교수는 소매를 치켜올린다는 뜻이니 소매를 공중에 뿌리는 동작일 것이고, 절요는 허리를 꺾는다는 뜻이니 몸을 뒤집는 ‘번신(翻身)’ 사위일 것이다. 번신 동작은 한 번만 할 수는 없고 저절로 연속해서 수행하게 되니 이 춤은 선회하면서 소매를 뿌리는 동작이 된다.

유방을 매혹한 척부인의 교수절요지무가 어떤 춤인지 필자는 늘 궁금했다. 중국 무용사에는 소매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한나라 이후에도 선회하는 춤은 자주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호선무는 당나라 때 연회에서 빈번하게 공연되었는데, 선회하는 동작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런 명칭으로 불렸다. 회오리바람처럼 빨리 회전하는 무용은 당시에 매우 유행하였다. 북송의 수도 변량에는 와자(瓦子)라고 불리는 번화가가 많이 있었다. 와자에는 구란(勾欄)또는 유붕(遊棚)이라고 불리는 울타리를 친 장소가 있었는데, 여기서 매우 다양한 기예가 공연되었다. 그중 무용을 ‘무선(舞旋)’이라고 불렀다. 선회의 동작이 당시의 무용 동작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교라고 생각하여 무용 공연을 총칭해 무선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척부인의 교수절요지무를 필자는 드디어 무대에서 보았다. 신운(神韻) 예술단은 이 춤을 ‘번신’이란 명칭으로 복원하였던 것이다. 번신은 아름다운 색깔의 긴 소매를 양팔에 매달고 공중으로 날리며 빠른 속도로 선회하는 동작인데, 마치 형형색색의 커다란 바퀴들이 무대를 가득 굴러가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단체는 2006년 중국의 해외 동포들이 미국 뉴욕에서 창단했는데, 올해 2월 2일부터 5일까지 소향 씨어터에서 공연했다. 필자는 2020년 내한 공연도 창원 3·15센터에서 관람했다.

신운 예술단의 이념은 전통 무용의 창조적 계승이다. 창조적 계승은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도 아니라서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계승은 전통의 유지인데 창조는 파괴여서, 창조적 계승 개념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신운 예술단은 이 모순적 과제를 훌륭하게 성취하고 있다. 중국 전통 무용은 기교와 서사라는 두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기교란 무용의 동작이며, 서사란 동작의 연결을 통하여 구성하는 메시지이다. 신운은 중국 전통 무용의 기교는 수용하지만, 서사는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전통을 복원한다.

무술과 무용은 중국 전통에서 동일한 문화적 영역에서 유래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춤과 무술에는 비슷한 동작이 많다. 신운의 공연에는 무술 같은 동작이 자주 나온다. 소당(掃堂)은 무술에서 상대의 발을 차서 쓰러뜨리는 동작이며, 비각(飛脚)은 점프하여 공중에서 양발을 번갈아 차는 동작이다. 전정(前挺)은 공중으로 높이 솟아 한 바퀴 돌고 착지하는 동작인데, 이것은 무술뿐 아니라 체조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쌍비연(雙飛燕)은 점프하여 공중에서 두 다리를 일자로 뻗는 동작으로 매우 씩씩하다. 쌍비연이라는 동작의 명칭은 예전부터 있었다.

중국가극무극원은 1964년에 설립된 중국의 국립무용단이다. 이 단체도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한다. 신운 예술단은 전통의 기교를 수용하고 서사는 변화시키는 데 반해 중국가극무극원은 기교는 바꾸고 서사는 전통에서 끌어온다. 중국가극무극원의 2012년 작품 ‘공자(孔子)’는 이상세계를 건설하려는 공자의 역사적 활동을 소재로 삼고 있으나, 기교는 전통 무용 동작을 별로 활용하지 않고 연기나 서양의 현대 무용 동작을 많이 활용한다. 신운 예술단과 중국가극무극원은 각자의 방식대로 전통을 창조적으로 복원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전통 무용계는 전통의 계승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무용가들은 국가나 지방 문화재로 지정된 작품을 전통성은 따지지도 않고 순서를 외우는 데만 집중하며, 일부 무용가들은 전통 무용은 팔만 들어도 춤이라는 나태한 자만에 빠져 전문적 기교를 보여 주지 않는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현대의 문제는 고향 상실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고향 상실은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정체성 상실이다. 이 문제는 전통을 복원하여 자아를 전통 속에서 바라보면 극복할 수 있다. 전통 무용의 창조적 계승은 고향을 찾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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