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도권 공장 총량제' 원칙, 무너뜨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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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화국’ 중심 정부 첨단산업 육성
수도권 규제 완화로 균형발전 훼손 우려

수도권 반도체 공화국 추진으로 수도권 공장 총량제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15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국가첨단산업벨트 추진을 위한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장면. 연합뉴스 수도권 반도체 공화국 추진으로 수도권 공장 총량제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15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국가첨단산업벨트 추진을 위한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장면. 연합뉴스

첨단산업의 수도권 쏠림 가속화가 우려된다. 정부가 수도권에 300조 원 규모 투자를 유치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한 때문이다. 가뜩이나 모든 산업과 자본, 인재가 수도권에 몰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 공장 총량제’까지 만들었는데 국가 전략산업 육성이라는 명분하에 이마저도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전국에 15개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하고 6대 첨단산업에 2026년까지 550조 원 규모의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 계획’ 및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이번 정부 정책의 핵심은 ‘수도권 반도체 공화국’ 건설이다. 2042년까지 경기도 용인에 300조 원을 투입해 시스템반도체 생산 라인 5개를 건설하고 국내외 소부장 기업 150개를 유치한다. 이를 기존 생산 단지인 기흥, 화승, 평택, 이천에 연결해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효과만 700조 원 생산유발에 160만 명 고용이다. 정부는 이 밖에도 충청권 미래 모빌리티, 호남권 우주산업, 대구·경북권 원전 모듈, 경남권 방위·원자력 등 지역에도 14개 첨단산단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투자 규모나 경제효과를 감안할 때 수도권 반도체 공화국을 위한 들러리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부산과 울산은 100만 평이 넘는 산단 부지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예 빠졌다.

특히 문제는 이 같은 대규모 수도권 투자 계획이 수도권 공장 총량제 원칙마저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정부는 수도권의 과도한 제조업 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1994년부터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수도권 공장 총량제를 도입해 공장의 신·증설을 억제해 왔다. 이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규모만 215만 평(710만㎡)이지만 공장 총량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미 정부는 2020년에도 용인에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해 총량제 예외 사례로 허용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해 9월에도 기아차 화성 공장 건설에 총량제를 편법 적용해 논란이 됐다. 당시 전국 균형발전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도권 초집중과 난개발을 억제하기 위한 원칙을 정부가 앞장서 무너뜨린다고 반발했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첨단산업 육성에 반대할 지역은 없다. 문제는 수도권 집중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프라가 집중된 수도권에 투자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결과가 수도권 블랙홀이다. 이를 균형발전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정부다. 반도체만 해도 꼭 수도권에 다 몰아야 하나. 정부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기회발전특구니 교육특구니 내세워도 현실적으로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이번 첨단산업단지 조성도 결국은 수도권 규제 완화를 위한 것이라면 수도권 블랙홀과 지역 산업생태계 황폐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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