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골프 연습장이 들어섰다…그 이후 집 나간 꿀벌이 안 돌아왔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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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폐사 피해 함양 양봉 농가
“인근 골프 연습장이 원인” 지목
야간 조명 탓 꿀벌 죽었다 주장
빛가림막 설치 약속 이행 공방

꿀벌 수백만 마리가 몇 달 새 집단 폐사한 경남 함양군의 한 양봉농가는 인근 골프연습장의 야간 운영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벌통에서 불과 30~40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골프연습장. 꿀벌 수백만 마리가 몇 달 새 집단 폐사한 경남 함양군의 한 양봉농가는 인근 골프연습장의 야간 운영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벌통에서 불과 30~40m 떨어진 곳에 들어선 골프연습장.

경남 함양군의 한 양봉농가에서 키우던 꿀벌 수백만 마리가 불과 몇 달만에 대량 폐사하는 일이 발생했다. 양봉농가는 겨울철 이상기온이나 농약이 아니라 인근 골프연습장의 야간 운영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함양군에서 40년 가까이 양봉농사를 지어 온 노종구 씨는 지난해 4월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맞았다. 겨울철 월동을 무사히 마치고 본격적인 양봉에 들어가려는 찰나 벌통에서 꿀벌이 사라지거나 폐사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5월 초·중순 아카시아 개화와 함께 꿀벌 활동 시기가 다가왔지만, 꽃꿀을 모으는 일을 할 꿀벌이 떼죽음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다.

노 씨가 운영하는 벌통은 110개다. 한 통당 꿀벌 3만~4만 마리 정도가 차 있었지만 지난해 9월까지 대부분 폐사하고 현재 1통 규모만 겨우 살아 남았다. 해마다 크고 작은 규모의 꿀벌 폐사가 있었지만 이번 같은 떼죽음은 처음이었다.


큰 피해를 입은 양봉농가와 텅 빈 벌통. 큰 피해를 입은 양봉농가와 텅 빈 벌통.

노 씨는 꿀벌 대량 폐사 원인으로 지난해 4월 개장한 골프연습장의 ‘빛’을 지목한다. 해당 골프연습장은 농장에서 불과 30~4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오후 7~10시 3시간 동안 야간 운영을 한다. 서치라이트가 곳곳을 비춰 주변을 밝히다 보니 벌이 시간을 착각해 벌통에서 나가 버린다는 것. 이후 서치라이트가 갑자기 꺼지면 벌이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대로 동사하거나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게 노 씨의 주장이다.

노 씨는 “꿀벌이 저녁 시간과 낮 시간을 착각해 벌통에서 나간 뒤 밤 10시쯤 빛이 갑자기 사라지면 다시 벌통 위치를 찾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꿀벌이 대부분 빠져나가면 남은 벌로는 벌통 안의 온도를 맞추기가 불가능해지는데, 15도 아래로 떨어지면 결국 모두 폐사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골프연습장 개장 당시 함양군과 골프연습장 관계자가 빛가림 시설을 설치해 준다고 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가림막 설치 업체 측에서 바람이 통과하지 못해 안전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가림막 설치에 난색을 표시했다는 게 군청의 설명이었다.

결국 대안 마련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바람에 꿀벌 대다수 폐사로 이어졌다. 한 꿀벌 전문가는 “꿀벌이 빛에 민감한 건 맞다. 또 빛 때문에 밖으로 나간 뒤 빛이 사라지면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다만 정확한 상관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선 좀 더 확실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골프연습장 측은 일단 조명의 방향을 조정해 농가 쪽으로 향하는 빛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또 농가 측과 보상을 협의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골프연습장 관계자는 “일단 조명 방향을 최대한 조절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보상 역시)농가와 만나서 원활하게 해결하려고 생각 중이다”라고 말했다. 함양군 역시 뒤늦게 양측의 원만한 합의를 위해 중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글·사진=김현우 기자 khw82@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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