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쏟으며 죽은 전우 보고 총신 뜨겁도록 쏘고 또 쐈다” [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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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철 다부동용사회 대구지부장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전우가 북한군의 총탄을 맞아 시뻘건 피를 쏟으며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는 정말 머리가 확 돌았어요. 그때부터 무서운 게 없더군요. 총신이 달아오르도록 M1소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지요. 전투가 소강상태가 되면서 전우의 주검을 수습할 때 불쌍하다는 생각이 엄습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전투 수암산 고지전에 참전했던 이동철(사진·91)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대구지부장의 눈가는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게 촉촉해졌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치열했던 전투 현장과 눈앞에서 산화한 전우의 기억은 어제처럼 또렷하다. 이 지부장은 1950년 8월 중순 국군 1사단 12연대 2대대 5중대 이등병으로 다부동 전선에 투입됐다. 훈련은 첫날 부대편성과 응급처치, 둘째와 셋째 날 소총 분해결합, 실탄 8발 사격이 고작이었다. 1사단에 전입한 그는 다음날 해 질 녘 수암산 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나이 열여덟이었다.

이 지부장은 “수암산 고지를 차지하려고 돌격하는데 박격포와 수류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북한군 박격포는 정말 지독했다. 그때 전우들이 정말 많이 죽었다”면서 “이후 영천 신령전투 현장으로 이동했고, 수색병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대장이 수류탄으로 적 탱크를 저지할 사람을 뽑는다고 해 자원했다. 이는 수색대원을 모집하기 위한 연막이었다. 수색대원이 돼 도로에 대전차 지뢰를 매설해서 후퇴하던 적의 마차 3대와 적군을 폭사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이 기억하는 백선엽 사단장은 무섭지만 따뜻한 지휘관이다. 1사단 사령부가 있던 동명국민학교에서 백 사단장을 처음 봤다. 그는 “처음 본 사단장은 무서웠다. 큰 덩치에 철모와 시커먼 보안경을 쓰고 있어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였다”면서도 “북진 과정에서 박격포 포신을 메고 가는 병사를 보면 대신 메고, 지프에서 내려 병사들과 함께 연기를 흩날리며 담배 피우던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하면서, 정말 부하를 사랑하는 지휘관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고 백선엽 장군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것은 너무나 분하고 개탄스럽습니다. 만약 다부동이 뚫렸다면 대구와 부산이 함락돼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겁니다.” 글·사진=이영욱 매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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