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전 태평양 건넌 조선 궁중 악사들, 어떤 음악 연주했을까?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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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태평양을 건넌 조선 궁중 악사들' 연주자들. 피리 김지윤, 플루트 장예지, 클라리넷 유지훈, 피아노 이진성. 소리 숲 제공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태평양을 건넌 조선 궁중 악사들' 연주자들. 피리 김지윤, 플루트 장예지, 클라리넷 유지훈, 피아노 이진성. 소리 숲 제공

궁중음악 담당 ‘장악원’ 악사들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서

한국 전통음악 서양서 첫 연주


소리 숲, 25일 스페이스 움서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음악회

130년 전 연주 착안 상상력 가미

피리·클라리넷·플루트·피아노 앙상블

궁중음악과 클래식 음악 엮어내



130년 전 태평양을 건넌 조선의 궁중 악사들은 어떤 음악을 연주했을까. 부산의 소리연구회 ‘소리 숲’은 이런 재미난 발상으로 25일 오후 5시 부산 동래구 명륜동 작은 공연장 ‘스페이스 움’에서 음악회를 연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타이틀을 내걸었지만, 순수 자부담으로, 자발적으로 치르는 음악회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한국과 세계박람회(엑스포)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다.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식적으로 참가한 첫 세계박람회는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다. 한국(당시 조선)은 8칸짜리 한옥 와가(瓦家) 형태의 첫 국가 전시실을 설치하고 참가한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약 6개월간 진행된 시카고 세계박람회는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세계박람회에 궁중음악을 담당하는 장악원(掌樂院) 악사들이 파견됐다. 참가 단장은 정경원. 그는 수행원(사무원 통역원) 2명, 장악원 소속 악사 이창업 등 10명을 이끌고 조선을 대표하는 박람회 사절로 활동했다. 고종이 궁중 악사를 시카고까지 보낸 것은 조선의 음악이 중국과 다름을 보여주기 위한 좋은 수단이라는 미국 선교사 알렌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시카고에 파견된 악사들은 1893년 5월 1일 시카고 세계박람회 개막식 날 미국 전시관 앞에서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악을 연주했다. 한국 전통음악이 사상 최초로 서양에서 연주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전통음악이 동양의 전통음악 중에 가장 뛰어나다”는 호평과 함께 상까지 받게 된다. 연주곡목은 어전법악(御前法樂)이었다고 기록돼 있을 뿐 구체적인 곡목을 알려지지 않았다. 이때 연주했던 국악기들은 미국 현지에 두고 온다. 당시 출품 국악기 10점은 행사 폐회 뒤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 기증됐으며, 2013년 12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와 서울에서 ‘120년 만의 귀환, 미국으로 간 조선 악기’ 특별 전시회를 통해 외부에 첫 공개되기도 했다.

소리 숲 김지윤 대표는 “아티스트 시선에서 부산이 월드엑스포를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창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박람회 참가에서부터 우리의 전통음악이 함께했음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고자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주곡은 국악 합주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는 피리와 서양의 피리라 불리는 클라리넷, 플루트, 그리고 피아노 등 네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앙상블로 구성했다. 세계박람회에 참가해 궁중악사들이 연주했던 궁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엮어 100여 년 전 융합의 모습을 상상한다. 전통에 기반한 ‘수제천’과 ‘해령’은 피리 클라리넷 플루트로, 베토벤(월광) 쇼팽(이별의 곡) 라벨(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리스트(위안) 곡은 피아노 피리 플루트 클라리넷 등으로 편곡한 곡으로 들려준다. 동서양 관악기의 합주가 기대된다. 당초 계획했던 종묘제례악 정대업 중 분웅은 태평소 소리가 공연장 규모에 비해 너무 커서 제외했다. 더 큰 공연장에서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쉽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엄지척 오디션에서 김지윤 소리 숲 대표가 최우수상을 수상한 본선 장면. 부산상공회의소 제공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엄지척 오디션에서 김지윤 소리 숲 대표가 최우수상을 수상한 본선 장면. 부산상공회의소 제공

김 대표는 “전통음악을 재해석한 이번 연주회는 세계 어느 곳에서 연주되어도 보편성을 가질 것이며 한국의 전통음악이 더 이상 한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시리즈 음악회는 앞으로 두 번을 더 열 계획인데 이다음엔 더 큰 공연장에서 만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소리 숲은 국내 ‘피리 박사 1호’ 김지윤을 주축으로 2014년 9월 창단한 음악 단체다. 피리 및 해설 김지윤(서울대 음악박사·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 클라리넷 유지훈(프랑스 베르사유 국립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플루트 장예지(독일 바이마르 리스트 국립음대 연주자과정 졸업), 피아노 이진성(독일 데트몰트 음대 최고연주자과정 졸업)이 출연한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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