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박람회와 인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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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스틸 컷.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 스틸 컷.

‘용길이네 곱창집’(2020)은 재일조선인들의 삶의 비애를 다룬 영화다. 태평양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고 제주 4·3사건으로 고향과 가족마저 잃은 용길은 오사카의 공항 활주로 인근 판자촌에 깃들어 산다. 오사카시에서는 1970년 세계박람회를 준비하며 도시미관을 해치는 판자촌을 철거하려 한다. 용길은 ‘일하고 또 일하며’ 악착같이 버텨왔건만 또다시 삶의 변방으로 떠밀려야 할 처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박람회 박람회!” 박람회의 불꽃은 위태로운 판자촌의 밤하늘에도 화려하게 빛나고, 사람들은 내남없이 박람회 구경에 열을 올린다. “너도 가 보는 게 좋을 걸. 보도가 막 움직이고 또 모노레일! 미래가 벌써 눈앞에 있는 것 같다니까.”

19세기 중반 탄생한 세계박람회는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에 기반한 문명국가의 국력을 과시하는 장이었다. 영국은 1851년 런던세계박람회에서 거대한 유리온실 수정궁을 선보였다. 공장에서 생산한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여 단기간에 지은 박람회장이다. 이 혁신적 공법은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의 선진 기술력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미국은 1853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 엘리베이터를 선보여 신흥기술강국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에펠탑 역시 마찬가지다. 1889년 파리세계박람회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프랑스의 자존심을 상징했다.

박람회를 국가주의적 문화정치에 동원하는 일은 20세기에도 여전했다. 일본은 오사카세계박람회를 통해 종전 25년 만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성과를 과시하고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했다. 허름한 판자촌을 헐고 공원을 조성해야 했던 것은 ‘보여주기’ 전략이었다.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굉음을 일상으로 여기며 살던 용길이네 가족과 이웃들에게 박람회는 무엇을 실어 왔을까. 이 박람회에서는 무빙워크와 모노레일, 휴대폰, 전기자동차, 화상전화가 첫선을 보였다. 박람회가 디스플레이 한 것은 그저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였다.

21세기 들어 중동과 아시아, 남미의 도시들이 박람회 개최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즈음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열기가 뜨겁다. 부산이 한갓 동아시아의 변방이나 한국의 지방도시에 머물지 않고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주체로 브랜딩하는 첫걸음이다. 2020년 두바이세계박람회를 통해 황량한 사막을 미래산업의 옥토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부산세계박람회는 어떤 가치를 담을 것인가. 기술로 구현하는 미래의 스펙터클만으로는 부족하다. 초고차원적 산업혁명과 우주산업, 기후위기, 탈냉전, 문화다양성과 같은 이 시대가 직면한 근본적인 의제를 진열하는 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용길이네 가족이 정든 삶터를 떠나던 그날처럼 벚꽃이 흩날리는 계절이다. 새로운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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