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경고 메시지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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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현철 독자여론부장

지구촌 최악 대지진 ‘고통의 나날’
우리 국민, 성금·구호 활동 잇단 온정

한국전쟁 참전, 보육원 설립 사업도
2002 한·일 월드컵 3·4위전서 혈투

한반도도 언제든 큰 지진 발생 가능성
국민적 경각심·내진 설계 강화 필요

지난달 6일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두 나라에서 5만 명 이상이 숨지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구촌 최악의 대지진으로 튀르키예에서만 45조 원이 넘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고, 2차 및 간접 영향까지 고려할 경우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한 외신 보도도 나왔다. 국내에서는 정부와 복지단체 등을 중심으로 두 나라 피해 지원을 위한 성금 모금 활동과 구호 물품 전달이 지난달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원과 복구에 이처럼 뜨거운 동참을 하는 데는 양국이 오랫동안 ‘형제의 나라’라는 국민적 인식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투르크’족의 후손들이 세운 국가로, 고조선 시대에선 ‘흉노’, 고구려 시대에선 ‘돌궐’이란 나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돌궐은 몽골계 유목민으로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국 한족을 수없이 위협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민족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고조선은 흉노와 강력한 동맹이었고, 고구려는 돌궐과 연합해 당나라와 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구려 연개소문 장군은 돌궐 공주와 혼인을 맺을 정도였으니 두 나라의 동맹 관계가 얼마만큼 탄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튀르키예(당시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도 양국이 ‘형제의 나라’라는 인식에 큰 기폭제가 됐다. 국제연합군(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많은 1만 5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며 한반도 곳곳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튀르키예는 참전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국내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데도 큰 힘을 쏟았다.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던 곳 인근을 빌려 보육원을 설립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1952년 경기도 수원에서 문을 연 ‘앙카라 학교’이다. 앙카라 학교에는 수백 명의 부모 잃은 어린 아이들이 숙식을 했다고 한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이 휴전 국면에 접어들 시점에도 보육원 지원을 계속할 정도로 우리 국민들에게 온정을 베푼 나라다. 현재 수원에는 당시 튀르키예군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앙카라 학교 공원과 기념비가 건립돼 있다.

튀르키예의 연합군 참전에는 당시 자국의 역사적 배경이 크게 작용한다. 1940년대부터 소련(지금의 러시아)의 영향으로 동유럽에 공산주의 국가가 점차 늘자, 튀르키예는 심한 위기 의식을 느꼈다. 이에 따라 이슬람 교도가 대다수인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 했지만, 기독교와 가톨릭이 주축인 가입국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 무렵 한국전쟁이 터졌다. 튀르키예는 자국의 정치적 이념과 노선이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임을 널리 알리고 싶어 참전을 결심했다. 결국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게 됐는데 연합군 국가들의 도움과 한국전에서 빛났던 전투력, 한국인들에게 베푼 선행이 큰 힘이 됐다. 이후 양국은 1957년 수교를 맺었다.

특히 1990년대까진 튀르키예는 우리 국민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진 국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튀르키예가 3·4위전에서 만나게 되면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처럼 오랜 시간 끈끈한 정과 역사적 배경으로 돈독한 우호를 과시해 온 튀르키예에 지난달 대참사가 빚어지자, 최근 ‘한반도는 지진의 안전 지대’인가라는 주제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개최한 ‘국민생활과학토크콘서트’에서 박정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반도는 지각의 충돌이 일어나는 판의 경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역사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지진이 많지는 않았다”면서도 “오늘날 지방과 수도권에서 일정 이상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튀르키예 지진과 같이 큰 지진 피해를 입는 지역은 대부분 충돌이 많이 일어나는 대륙판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 대륙판 경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진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보다는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았다. 지진의 빈도 자체도 낮았지만 크거나 중간 규모의 지진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 기록물에도 한반도에 과거 2000년 동안 일상생활에 피해를 입힐 정도인 규모 5~10의 지진이 40회 정도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언제든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큰 규모의 지진이 아니더라도 상당한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국민적 경각심을 갖고, 건물 내진 설계 강화 등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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