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질환 ‘기적의 치료제’, 국내 임상은 걸음마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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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재생의료 현주소

초고가 치료비에 일반 환자는 부담
건강보험 적용되며 일부 약값 인하
허가 받지 않은 병원서 치료는 불법
일본 중국 등 원정치료 나서기도

법으로 실시 의료기관 지정받아야
동아대·제2항운병원, 임상 시작
관련법 미비 조항 개선 목소리 높아
연구 질환 대상·분야 확대 절실해

박소라 재생의료진흥재단 원장이 지난 18일 ‘첨단재생의료와 의료산업’을 주제로 누네빛안과 확장개원식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누네빛안과의원 제공 박소라 재생의료진흥재단 원장이 지난 18일 ‘첨단재생의료와 의료산업’을 주제로 누네빛안과 확장개원식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누네빛안과의원 제공

말기 혈액암 환자에게 기적의 치료제로 불리는 세포유전자 치료제 ‘킴리아’.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이 치료제는 1회 투약하는 약값만 5억 원이다. 처음 국내에 도입될 당시에는 일반인이 엄두도 못 냈지만 지난해 4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약값이 500만 원대로 떨어졌다.


■초고가 약값 치러야 하는 ‘기적의 치료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길리어드사의 CAR-T 치료제인 ‘예스카타’도 약값만 4억 원이다.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로 개발된 ‘졸겐스마’의 약값은 무려 28억 원에 이른다. 현재까지 출시된 치료제 중에서 가장 비싼 약은 호주 제약사 CSL이 개발한 혈우병 치료제 ‘헴제닉스’로 46억 원이다.

이들 약물은 그동안 치료가 어려웠던 희귀 난치성 질환에 적용되다 보니 약값이 초고가다. 반면에 치료율은 아주 높다. 킴리아의 경우 반응률이 82%, 헴제닉스는 94%로 보고되고 있다. 이들 약은 평생 반복적으로 복용하지 않고 한 번 투약으로 병을 한 번에 완치하거나 수년간 지속하는 효과를 제공한다.


■해외 원정시술, 허가 받지 않은 치료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치료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를 떠돈다. 해외 원장치료에 나서기도 한다. 줄기세포 치료나 면역세포 치료가 여기에 해당된다.

국내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의료기관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는 것은 불법이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에서 환자의 복부에서 지방세포를 채취해서 최소한의 조작행위를 넘어선 배양 과정을 거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줄기세포 치료가 인정되지 않다 보니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등으로 가서 수천만 원씩 지불하면서 치료를 받고 들어오곤 했다. 환자 한 명이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에 가까운 치료비를 쓰고 들어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19때 외국여행이 금지되면서 잠시 주춤했지만 탈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해외 원정치료가 다시 증가하는 분위기다.

박소라 재생의료진흥재단 원장은 지난 18일 ‘첨단재생의료와 의료산업’을 주제로 한 누네빛안과 확장 개원식 특강에서 “국내 병원에서도 허가받지 않은 불법 시술과 임의 비급여 형태의 시술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환자 안전에 위협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손실도 발생하고 있다. 첨단재생의료를 통해 새로운 치료약을 개발하고 의료산업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혈액암 치료제 킴리아로 2017년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을 완치한 에밀리 화이트헤드. 에밀리화이트헤드재단 홈페이지 혈액암 치료제 킴리아로 2017년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을 완치한 에밀리 화이트헤드. 에밀리화이트헤드재단 홈페이지

■지정된 첨단재생의료기관서 임상 진행

우리나라에는 이미 불필요한 해외 원정치료를 막고 허가받지 않은 불법시술을 차단하기 위한 첨단재생의료법이 제정돼 2020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희귀 질환이나 난치성 질환 등으로 고생하고 있거나 치료가 절실한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하고, 신속한 제품화를 통해 의료산업 육성에 이바지하자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다.

첨단재생의료의 범위는 크게 세포치료, 유전자치료, 조직공학치료 등이다. 세포치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일본 등으로 나가 원정치료를 많이 받는 분야가 면역세포 치료제다.

면역세포에 유전자를 넣어서 개발한 것이 세포유전자 치료제인데, 킴리아와 예스카타가 여기에 해당된다. 자궁이나 방광 등의 장기를 외부에서 만들어 이식하는 것이 조직공학치료이다.

법 시행 이후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이 첨단재생의료 실시기관으로 지정을 받았다. 동아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 부산제2항운병원 등도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정을 받아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재생의료진흥재단은 이들 의료기관에게 지정단계에서부터 임상연구 승인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컨설팅해 주는 비영리 재단이다. 구체적으로 첨단재생의료 정책 및 제도의 연구, 임상연구 지원, 전문인력 양성 교육사업 등을 지원한다.


■의료산업 발전 vs 환자 안전

우리나라는 2011년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 허가를 받은 기록을 갖고 있지만 황우석 박사 사건 여파로 연구 진척이 아주 더디다. 첨단재생의료산업의 생태계가 아주 취약하고 기반기술도 부족하다. 임상연구에 필요한 유전자 운반체인 바이러스 벡터도 제때 제공되지 않아 2년씩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법이 시행된 지 2년 이상 경과한 상황에서 미비한 부분에 대한 개정 요구도 나오고 있다.

우선 연구대상을 난치 희귀질환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치매 뇌졸중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박소라 원장은 “연구 대상 질환에 대한 제한을 없애는 쪽으로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 또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 환자 접근성 차원에서 제한적 치료나 시술을 통해 해외로 가는 환자를 국내에서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첨단재생의료는 ‘의료산업’과 ‘환자 안전’ 측면에서 충돌되는 지점이 생긴다.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선 규제가 완화될 필요가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를 너도나도 사용하면 환자안전에 위협을 주게 된다.

박소라 원장은 “첨단재생의료 치료약을 복용한 희귀 난치환자들의 기적이 한 번에 그쳐선 안 되고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 연구기관, 시민단체, 환자 등 이해 당사자 간의 신뢰구축이 아주 중요하다”말했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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