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대체될 직업은 없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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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진 사회부 차장

고백컨대, ‘챗GPT(Chat Generated Pre-trained Transformer)’를 애써 모른 척 했던 건 ‘막연한 두려움’ 탓이었다. AI가 그린 그림이 경매시장에 나오고, AI가 시집까지 출간하는 상황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대화까지 나눌 수 있는 AI’라니!

사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는 이미 있었다. 은행이나 대형 쇼핑몰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24시간 고객서비스 ‘챗봇’이다. 하지만 원하는 서비스와 제대로 된 답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진짜 직원’을 호출해야 했다. 집에서 쓰던 AI 스피커 ‘클로바’도 있다. ‘짱구’라고 이름 붙인 클로바에게 아침마다 날씨와 미세먼지를 묻고 알람을 부탁한다. 아이가 “날씨 알려줘서 고마워 사랑해 짱구야”라고 하면 “도움이 됐다니 기뻐요. 저도 사랑해요”라고 답해 친구 같기도 하지만 가끔 발생하는 오류에 ‘기계’임을 깨닫고는 했다.

챗GPT는 ‘뭔가’ 달랐다. 주변 반응부터 뜨거웠다. 세계도 들썩였다. 이용자 100만 명 시대를 열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일. 두 달 만에 1억 명을 달성했고, 지금은 2억 명을 훌쩍 넘겼다니 혁명과 다를 바 없다.

도대체 어떤 서비스기에 이토록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결국 호기심이 막연한 두려움을 눌렀다. 간단한 가입 절차를 거친 뒤 한국어 질문부터 던져봤다. 그간 지적됐던 한국어의 어색함이 그새 크게 보완된 듯했다.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와 가덕신공항 필요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미국 워싱턴주 8일 여행 코스도 ‘함께’ 짰다. 질문은 이어졌고, 대화는 계속됐다. ‘챗GPT 이후 사라질 직업’을 시작으로 꼬리를 물던 대화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왜 살아남을까?’라는 마지막 질문에 챗GPT는 대답했다. ‘대중에게 사회적 이슈와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분석 능력, 감성과 창의성, 상호작용과 의사소통 능력 등이 필요합니다. 이는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 굶주린 채 맞아 죽은 4살 여자아이의 죽음 뒤에 숨겨진 또다른 가정폭력과 가스라이팅, 성매매, 그리고 이를 야기한 사회적 모순을 파헤친 것은 기자들의 감각이다. 고리원전 2호기를 둘러싼 시민들의 목소리를 알려내는 것도, 운영난을 겪던 장애인들을 위한 야학에 사회적 관심을 불어넣은 것도, 거리를 메웠던 불필요한 현수막을 걷어낸 것도 기자들의 열정 덕분이다.

다른 직업들 역시 일부 자동화될지언정 전적으로 대체될 수 없다. 챗GPT 표현대로 이들 대부분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과 특성이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챗GPT 관련해 새롭게 주목받는 직업들, 이를테면 AI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가공하는 ‘데이터 라벨러’도 마찬가지다. 미국 언론 〈타임(Time)〉이 보도했듯 챗GPT가 오류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건 성폭력, 인종차별 등과 같은 수많은 악성 데이터를 걸러낸 케냐 노동자들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챗GPT를 쓰면서 대체되지 않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산업이 사람 중심으로 재편돼야 함을 새삼 확인하게 됐다. 챗GPT가 왜 사람을 사로잡았는지 알겠다. 챗GPT 4.0 이용을 위해 조만간 20달러를 낼 것 같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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