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산 독립의 꿈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안성민 부산시의회 의장

30여 년 정치인으로 살면서 가슴에 품어온 불온한 생각이 하나 있다. ‘부산이 싱가포르처럼 독립하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는 마실 물조차 사 먹어야 할 정도로 자원이라고는 하나 없는 가난한 도시국가였다. 그러나 불과 60년 만에 1인당 국내 총생산 세계 7위, 국가경쟁력 세계 2위 등 수많은 수식어를 자랑하는 세계 일류 국가가 됐다.

싱가포르가 단기간에 도약할 수 있었던 강력하고 결정적 동력은 지정학적 강점 덕분이다. 말레이반도의 관문으로 아시아와 중동, 대양주,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동남아 대표 물류 플랫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의 거센 파도를 타고 중국의 많은 항만이 위세를 떨치지만, 싱가포르는 부동의 세계 1위 컨테이너 환적항만 자리를 내준 적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세계 최고의 항만도시를 꿈꾸는 부산 역시 다르지 않다. 동북아 물류 관문으로 세계 2위 컨테이너 환적항만으로 그 위상이 당당하다. 지난해 기준 부산항은 수출입화물 1024만TEU(1TEU는 20피트짜리 환적 컨테이너 1개), 환적화물 1167만TEU를 처리했다. 세계 공장을 자처하는 중국의 여러 항만을 제외하면 연간 1000만TEU가 넘는 수출입 화물을 처리한 항만은 부산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뿐만 아니라 수출입 화물과 환적 화물이 각각 1000만TEU를 넘는 곳도 세계에서 부산 뿐이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전 세계 900개 컨테이너 항만을 평가해 발표한 항만연결성지수에서도 부산항은 세계 세 번째로 이름을 올린 바가 있을 정도다.

부산항이 환적화물로만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연간 1조 8000억 원에 달한다. 부산이 제대로 된 자치권을 가지고 해양·항만·물류를 토대로 금융·관광 등 연관 산업 발전에 주력했다면 진즉, 싱가포르 못지않게 도약했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정학적 우수성으로 세계 바다를 호령하는 부산이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공룡이 된 수도권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고 저출생, 고령화, 청년인구 유출로 ‘노인과 바다’뿐인 소멸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부산을 떠난 청년 수가 10만 명에 달하고 그 가운데 81%가 수도권으로 향했다는 점은 참으로 뼈아프고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돌이켜 보면 부산은 언제나 지역보다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로 인한 불이익도 기꺼이 감수했다. 한국전쟁 때는 1023일 동안 임시수도가 돼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를 지켜냈고 근대화의 관문 부산항은 수출 첨병으로 밤낮없이 국가 경제를 이끌었다.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개시한 1978년부터 세계 최대 원전 밀집도시라는 오명을 듣고 살았지만 대한민국 에너지 주권을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묵묵히 버텼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부산의 가치는 잊혔고 국가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자부심도 빛이 바랬다. 어찌 부산 독립의 꿈을 꾸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산을 비롯해 지역이 없으면 수도권도, 대한민국도 도약과 발전을 지속할 수 없다. 지역 소멸은 대한민국의 최대 위기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부산이 이번에도 구원투수로 나섰다.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를 유치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부활시키고 대한민국을 명실상부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것이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일극체제로 성공한 나라는 없다. 적어도 두 개 이상 경제권을 가지고 있어야 확실하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 2030부산월드엑스포가 수도권에 대응하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탄생시킬 기폭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2030월드엑스포 성공 개최 후 부산은 울산·경남이 함께하는 올림픽, 영·호남이 손을 맞잡는 월드컵 유치라는 더 큰 꿈에 도전할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