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얼룩말 '세로'와 동물원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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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원의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도심을 누빈 얼룩말 한 마리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지난 23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을 뛰쳐나와 주변 차도와 주택가를 돌아다니다 3시간 만에 붙잡혀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간 4살짜리 수컷 얼룩말 ‘세로’ 이야기다. 아프리카 초원을 누벼야 할 얼룩말이 1000만 명이 복작거리는 대도시 한복판을 달리는 흔치 않은 장면에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이목이 쏠렸다. 세로의 모습을 패러디한 게시물이 나오는가 하면, 인스타그램에선 세로를 주제로 한 노래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 이후 국내에는 세로가 동물원에서 탈출한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지금까지 나온 이유는 대체로 무리 생활의 습성이 있는 얼룩말 세로가 부모를 잃고 홀로 지내면서 쌓인 외로움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급격히 외로움을 타기 시작하면서 옆 우리의 캥거루와 싸우기 일쑤였고, 또 밥도 잘 먹지 않았다는 그간의 정황을 근거로 내놓는다. 명확한 이유야 세로만이 알 뿐이겠지만, 어쨌든 이후 세로에 대한 대접은 확연히 달라졌다. 암컷 얼룩말과의 합사 예정은 물론 심리 상태까지 관리받는다고 하니, 세로가 벌인 사고의 결과물이 꽤 쏠쏠한(?) 것 같다.

세로로 인해 촉발된 관심은 동물원 존폐 논란으로도 옮겨붙는 모양새다.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물권과 생명권을 옹호하는 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온 주제인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면, 동물원의 동물을 섣불리 자연으로 돌려보내거나 없애면 오히려 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동물원의 교육적·정서적 측면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다시 불거진 논쟁을 보면서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이었던 더파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폐업한 지 만 3년이 된 더파크는 재개장 여부는 고사하고 아직 부산시와 운영 업체 간 소송전이 진행 중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이 처한 사정이야 얼추 짐작이 간다. 실제로 동물 수는 폐업 전인 2019년 158종 950마리에서 2021년 말 기준 134종 516마리로 급감했다.

폐업한 더파크의 동물들에게 사고 이후 얼룩말 세로 수준의 대접은 언감생심이겠으나, 그래도 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만큼 지금 상태가 어떤지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재개장 여부와 관계없이 지내는 데 불편이 없도록 끝까지 당국이 신경을 써야 하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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