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횡재세냐 형평성이냐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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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팀장

금융·정유 업종 막대한 이익에 돈잔치
정치권 횡재세 징수 논의… 3개 법안 계류
정부, 횡재세 징수 불가… 타업종과 형평성
이중과세에 대한 조세 합리화도 고려해야

“횡재세를 도입하라” “형평성 차원에서 횡재세 징수는 불가하다”

최근들어 정유·금융 등 주요 업종의 ‘돈잔치’ ‘성과급 잔치’에 대한 횡재세 부과를 놓고 갑론을박이 거세다.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서민들은 난방비 폭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정유사들은 임직원들에게 연봉의 절반이나 기본급 1000% 안팎의 인센티브를 나눠줬다. 은행들도 고금리로 인한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 회사별로 수조 원대 수익을 내면서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이를 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유사, 은행 등을 대상으로 한 횡재세 도입 논의에서 나아가 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3건의 법인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정유사나 은행들이 어떻게 동시에 막대한 이익을 내는 것이 가능할까. 자유시장경제에서 시장가격이나 금리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서 정해지는데 어떻게 폭리를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유가와 금리에 대한 업체들간의 담합 내지 모종의 합의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정 업체가 가격을 임의로 높게 책정할 경우 경쟁사들이 가격을 조금만 낮춰도 시장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는데, 그러지않고 비슷한 가격대나 금리로 정하면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이들 업계를 좌지우지 하는 업체들이 많지않다. 정유사는 SK, GS, 오일뱅크, 에쓰오일 4곳뿐이고, 은행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횡재세는 기업이 비정상적으로 유리한 시장 요인에 따라 부당하게 높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간주되는 부분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도입된 세금이다. 정유업계의 횡재세 논의는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유럽연합(EU)과 미국을 포함한 여러나라에서 실행중이거나 실행이 임박한 모습이다.

EU는 ‘연대기여금’이란 명목으로, 화석연료 부문의 EU 회원국 기업이 지난해와 올해 벌어들이는 초과이윤에 대해 최소 33%의 세율로 부과할 예정이다. 영국은 ‘에너지 이익 부담금’을 매긴다. 석유, 가스회사의 이익에 기존보다 25%의 추가요율을 부과해서 영업이익에 대해 65%의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우리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에는 ‘초과 이득’에 대해 50%에 해당하는 법인세를 물리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일단 정치권의 횡재세 징수에 대해선 일단 한발 물러나 있다. 석유사업법에는 ‘국제 석유 가격 등락으로 이윤을 거둔 업자에게 부과금을 거둘 수 있다’는 항목이 있지만, 그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아서다.

또 타업종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지난해만 보면 이들 업종들의 이익이 과도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2017∼2021년 정유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5%다. 같은 기간 반도체 업종의 영업이익률은 22.2%였고, 통신기기 14.7%, 석유화학 9.2%, 철강 6.0%, 기계 5.9% 등으로 정유업계보다 높았다. 영업이익률이 훨씬 낮은 정유업계에 횡재세를 부과한다면 삼성전자나 SK텔레콤, 포스코도 형평성 차원에서 똑같이 횡재세 대상이 돼야하는 상황이다.

반대논리도 제기될 수 있다. 정유사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2020년 석유 수요 급감으로 연간 5조 원에 달하는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횡재세를 부과한다면 적자 상황에선 정부가 반대로 손실보전을 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때문에 횡재세 부과 법안이 업체들의 반발로 헌법재판소에까지 간다면 승소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횡재세 부과 대신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등 판매가격을 지역과 판매 대상별로 공개하는 내용의 석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금융업체들의 과도한 이익과 관련해서도 금융위원회는 횡재세 부과보다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를 통해 5대 은행 과점체제를 완전한 경쟁체제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시중은행과 소규모 특화은행을 추가로 늘리거나, 은행업 문턱을 낮춰 증권사나 카드사와 같은 비은행 금융사들에 은행의 일부 업무를 맡기는 방안이다. 향후 시중은행 부실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지만 이번 이자잔치 행태 이후 정부 차원의 대응이 불가피한 분위기다.

횡재세 부과는 형평성 문제도 있지만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에 대한 이중과세 성격이 짙다. 정부는 이미 부동산 보유에 대한 재산세에 고가라는 이유로 종합부동산세까지 부과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반발 내지 부작용도 적지 않다. 기업의 과도한 폭리는 지양돼야 하지만 징벌세를 부과할땐 형평성이나 과세 합리화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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