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채식을 왜 하냐고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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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젊은 세대의 채식 트렌드
비건 급식으로 더 늘어나
건강과 다이어트는 기본
환경 보호 등 동기 다양
생일처럼 특별한 날 인기
가볍게 접근해도 큰 효과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비건(채식주의) 인구는 2018년 150만 명에서 지난해 250만 명으로 증가했다. 트렌드미디어 ‘캐릿’이 Z세대 4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8.1%가 채식을 실천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교복 브랜드 ‘형지엘리트’가 초·중·고생 24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62%가 비건 식품을 먹어 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Z세대 이하의 청소년들은 학교 급식을 통해 채식을 접할 기회가 늘어났다. 최근 많은 학교가 식물성 재료로만 구성된 비건 식단을 도입하고 있으며 가까운 예로 경남교육청은 올해 유치원과 학교에 월 2회 채식 급식을 운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자연스럽게 요즘 10대와 20대 젊은 층 사이에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었다. 이는 이전까지 채식을 떠올릴 때 보편적으로 함께 연상되었던 고혈압, 당뇨, 성인병 예방과는 다른 동기들을 짐작게 한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가까운 생활 반경에 채식 뷔페와 비건 식당, 비건 베이커리들이 생기고 나서 채식을 하는 날이 잦아졌다. 이런 곳을 찾는 손님들은 소위 MZ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층이 다수인데,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다양한 채식 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질병 예방과 같이 채식을 통해 전반적인 건강 관리와 다이어트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목적은 세대를 불문하고 공통된 것이었다. 본인의 건강을 넘어 지구의 건강을 지키고자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들은 축산업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환경보호를 위해 채식을 선택하였다.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연구들이 보고되면서 육식의 대안으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채식이 저탄소식단으로 부상했다.

비건 음식점을 찾는 손님 중에는 외국인 비중도 높은데 아마도 종교적인 이유로 할랄 인증에서 자유로운 채식을 즐겨 먹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꼭 이슬람교가 아니더라도 불교문화와 사찰 음식을 떠올려 보면 비슷한 동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은 종교와 관계없이도 누구든 사찰 음식점에 방문하면 배 속과 함께 마음도 굉장히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쩌면 새삼 불교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고기반찬이 귀하던 시절에 채식은 사실 우리 삶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일상적인 일이었겠다.

동물보호와 동물복지를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채식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동물권인데, 관련해서 일화가 있다.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인 ‘일레븐 매디슨 파크’(EMP)는 2021년 갑자기 모든 동물성 식재료 사용을 중단하고 비건 메뉴만 팔겠다고 선언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이곳의 1인당 코스 요리 금액은 300달러가 넘는다. 거기다 미국의 특성상 세금과 팁이 별도로 추가되는데, 그러면 한화로 5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식사에 ‘풀떼기’만 나온다고 상상해 보라.

손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도 들었지만, 동시에 언젠가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일어났다. 이러한 소망은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그 호기심은, 그곳에 가면 평생 듣도 보도 못했던 어느 채소의 존재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또는 평범한 식물들을 창의적으로 조리해 요리로 탄생시킨 셰프의 아이디어에 대한 궁금증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근처에 머무를 일이 있어, 혹여나 망하지는 않았는지 영업 실태를 알아보았다. 식당은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성업 중이었다. 결과적으로 EMP를 방문하진 못했지만,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고가의 파인다이닝을 방문하는데 EMP는 특히 생일날 식사 장소로 인기가 높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비상한데, 설령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태어난 날인 생일만큼은 다른 동물의 생명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뜻깊게 다가와서 얼마 전 친구의 생일을 맞아 일부러 비건 레스토랑을 방문했다가 앞으로는 서로의 생일엔 채식 맛집에 가자고 약속한 일도 있었다.

식습관은 사람마다 다양하고 무엇을 먹는가에 대한 자유와 기쁨은 소중하다. 매일 엄격하게 비건 식단을 지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채식을 실천함으로써 동물권을 고민해 보거나 지구를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거나 마음의 안정을 얻거나 몸을 가볍게 할 수 있다면 가끔은 의식적으로 채식을 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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