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12. 꿈과 현실 사이 기록한 빛나는 초상, 임영선 ‘Banteay Srey/The sky and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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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선(1968~)은 몽골, 캄보디아, 티벳 등 동아시아 변방의 아이들을 담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91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93년 중국 베이징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미술학원 대학원에서 판화를 배웠고, 1995년 베이징에 있는 중국당대미술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귀국 후 2000년대 중반까지는 ‘다른 그곳’ ‘바다는 하늘이 되고’ 등을 주제로 안식처이자 치유처로서의 푸른 바다를 표현했다. 작가에게 바다는 현실이 반영된 공간이자 미지의 공간인 ‘거대한 초월적 자연’이다. 바다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이자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희망을 상징한다.

임영선은 2009년 개인전 ‘온 더 어스’에서부터 변방의 가난한 아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발표했다. 꿈과 현실, 그 사이를 기록하는 초상으로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구축했다. 변방의 아이들은 작가가 2008년 캄보디아 난민 캠프를 방문한 뒤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하지만 변방의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1993년 베이징 유학 시절, 몽골 방문이 계기가 됐다. 이후 작가는 캄보디아, 네팔 등에서 벽화 프로젝트와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들의 현실에 스며드는 예술적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초월적 자연에서 동아시아라는 현실의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 작가는, 바다로 안식처를 제공했듯이 동아시아를 다룬 작품에서도 ‘현실의 그들이 버틸 수 있는’ 희망의 터전을 발견한다.

임영선은 변방의 아이들과 실질적인 교감을 이어오고 있지만, 이방인의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작가는 그런 시선을 그대로 두고, 그들이 누리고 있는 환경과 삶을 화면에 꾸밈없이 투영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화면 가득 채워진 어린이의 밝은 얼굴은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두 개의 상황이 혼재한 화면은 세상과 마주한 아이의 태도를 발견하게 만든다.

‘Banteay Srey/The sky and The earth’(2008)는 넓게 펼쳐진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메마른 땅을 딛고 서 있는 두 명의 여자아이를 표현했다. 다른 작품에서의 밝은 모습과는 달리 아이들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정면으로 서 있는 아이와 자전거를 잠시 멈춘 아이는 이방인과의 만남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메마른 땅과 땅을 딛고 있는 맨발은 척박한 현실을 반영하고, 왼쪽의 손가락 끝을 만지는 모습은 긴장한 아이의 심정을 나타낸다.

아이들의 옷에는 그들의 추억과 기억, 꿈의 자락들이 기록되어 있다. 정면으로 선 아이에게는 높이 솟은 푸른 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자전거를 탄 아이에게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달리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늘과 오버랩된 인물, 아이들에게 반영되어있는 또 다른 모습, 그리고 땅바닥에 널린 낙엽 사이로 아스라이 피어나는 옅은 초록 새싹. 이것은 아이들의 가슴에 품은 추억과 꿈이 현실과 분리된 것이 아닌,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은정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자료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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