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전공학부 입학해 의대 간다고? 법 무시한 ‘혁신안’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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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 학내 공청회서 공개
학내 전과 현행법상 불가능
“도넘은 학생 모집” 안팎 비판
학교 측, 4일 만에 백지화

고신대 의과대 학생회 측에서 올린 SNS 메신저 내용 일부. 인터넷 사이트 캡처 고신대 의과대 학생회 측에서 올린 SNS 메신저 내용 일부. 인터넷 사이트 캡처

부산의 한 대학이 2024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일반 학과 학생의 의대 진학을 허용하는 ‘혁신안’을 검토해 논란이 인다. 현행법상 의대 전과가 불가능해 학교 측은 공개 4일 만에 이 같은 안을 철회했다. 법적 검토 없이 학과 개편안을 공개한 것을 두고 학교의 아마추어 행정이 빚은 촌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9일 고신대에 따르면 학교 측은 지난 24일 학과 구조조정안을 설명하는 학내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에서는 2024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 △학과 일부 정원을 조정하는 안 △자율전공학부를 신설해 학생을 모두 한 개 학과로 모집하는 안 등이 구조조정 방안으로 논의됐다. 자율전공학부 신설안은 학과 구분 없이 신입생을 자율전공학부로 모집한 뒤 2학년에 진학할 때 학생들이 희망 전공을 선택해 진학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2학년 때 일부 학생의 경우 의예과, 간호학과 등 의학계열 학과의 전공을 선택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을 학과 운영 방안에 포함했다. 학교 측은 1학년 신입생 중 3명 가량의 학생을 2학년 때 의예과 선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구조조정안 공청회를 거쳐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하는 교육부 공모 사업인 글로컬 대학 사업에 학과 개편 내용을 사업 내용 중 하나로 반영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청회 이후 의대 재학생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일었다. 의예과 학생회는 찬반 여부를 묻는 긴급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입학 후 의대 지원이 가능한 혁신안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국민신문고, 입시 커뮤니티 등에 게시됐다.

이 같은 형태의 의예과 운영이 일부 계층의 부정 입학 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입시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 같은 입학 방식이 인기 있는 의예과를 악용하는 사례라는 비판도 나왔다. 의예과 진학이 가능하다는 이점으로 상위권 학생이 자율전공학부에 대거 지원해 신입생 충원율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신대의 올해 정시에서 의대 경쟁률은 24.19대 1로 지역 의대 가운데 가장 높았지만 전체 신입생 충원율은 83.06%로 일반학과와 의대 간 선호도는 큰 격차를 보였다.

부산 지역 대학 의예과에 재학 중인 김 모(22) 씨는 “상위권 학생의 의예과 선호가 높은 상황에서 학교 신입생 모집에 의예과를 활용하겠다는 발상이 의학적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4일 만인 지난 28일 이 같은 혁신안을 전격 철회했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의예과의 경우 최초 입학 이후 학과 변경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학교 측이 관련 법 검토도 없이 혁신안을 만든 것이다. 대학가에서는 글로컬 대학 사업 취지상 사안에 따라 관련법 개정, 규제 완화도 가능하지만 국가 전체 의대 모집 근간을 흔드는 방식이어서 학교가 신입생 모집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의 한 대학 관계자는 “글로컬 대학 선정의 핵심인 혁신을 해야 하고 신입생 모집도 걱정해야 하는 대학의 이중고 속에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며 “의예과와 다른 학과의 입학 점수 격차 등 지역 대학이 처한 현실이 이번 논란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신대 관계자는 “현행법 검토도 없이 진행한 착오가 있어 자율전공학부 의대 진학 방안을 백지화한 것이 맞다”며 “향후 학내 의견 수렴을 거쳐 학사 개편안을 외부에 공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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