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이는 죄가 없다 [남형욱의 오오티티]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디지털미디어부 기자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고데기 학폭으로 인해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의 몸에 남은 화상 자국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고데기 학폭으로 인해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의 몸에 남은 화상 자국들. 넷플릭스 제공

*이 글은 드라마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더 글로리’ 문동은의 인생을 바친 복수가 마침내 끝났다.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없다’며 비릿하게 미소 짓던 가해자에게 동은은 가장 통쾌한 복수를 선사했다. 혼자서 한 일은 아니다. ‘없는 것들’의 연대, 아니 폭력으로 부모를, 인생을, 미래를 ‘잃은 것들’의 연대와 공감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완결된 복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10일 시즌 2가 공개된 이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는 2주 연속 ‘넷플릭스 톱10’ 비영어 시리즈물 부문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 톱10은 주간 누적 시청 시간을 기준으로 콘텐츠의 순위를 매기는 유일한 공식 차트다. 더 글로리의 누적 시청 시간은 1억 2359만 시간. 영어 시리즈물 1위인 ‘너의 모든 것 시즌 4’의 누적 시청 시간은 6406만 시간. 더 글로리의 절반에 불과하다.

“너는 잘못한 일이 없니?” 학교 폭력 피해자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라고 한다. 더 글로리는 이 우문에 대한 현답이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학폭이라는 진부한 소재를 다루면서 복수의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춘 탄탄한 서사에 있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 이 절대 명제를 향해 내달린다. 그래서인지 동은의 대사처럼 더 글로리 속 복수는 영화 ‘테이큰’ 같은 화려함은 없다. 동은은 18년간 증거를 모아 복수를 준비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숨긴 진실과 치부를 적절하게 폭로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인물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자격지심과 원한으로 맺어진 관계는 존재 자체가 서로의 약점이 되어 발목을 잡는다. 바둑처럼 치열한 수 싸움 끝에 동은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그들의 ‘영혼’까지 무너뜨린다.

더 글로리엔 모든 부조리를 주먹 하나로 해결하는 범죄도시 ‘마석도’ 같은 통쾌함도 없다. 그 자리를 메꾸는 건 피해자의 연대다. ‘연진’을 비롯한 가해자는 서로 약점을 헐뜯으며 갈가리 찢어진다. 반대로 동은을 비롯한 피해자는 서로 상처를 보듬으며 한데 뭉친다.

피해자가 뭉쳐 가해자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와 비슷하다. 다만 금자씨에선 복수의 순간에도 망설이거나,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피해자의 모습을 통해 복수의 찜찜함에 대해 말한다. 반면 더 글로리의 복수엔 찜찜함이 없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강현남’, 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은 ‘주여정’ 등 피해자의 연대는 마석도, 금자와도 다른 차원의 통쾌함을 선사하며, 이 사적 복수극이 ‘권선징악’이라는 가치를 내걸어도 되는 이유다. 동시에 세상의 수많은 동은에게 보내는 위로다. 모든 피해자에게만 영광이 있기를.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