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오를 때 좋았던 전세… 외신 “부동산 침체기 한국 경제 발목” [코리아 리포트]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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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특한 전세 제도 주목
전세 둘러싼 갈등 커진다는 분석
민간 지출 타격 부메랑 우려도
내집 마련 어려운 2030이 피해
국내서도 전세 존폐 놓고 이견

급격한 부동산 침체기 때 한국의 독특한 전세 제도가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부산 해운대구와 수영구 전경. 부산일보DB 급격한 부동산 침체기 때 한국의 독특한 전세 제도가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부산 해운대구와 수영구 전경. 부산일보DB

월세가 일상화된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전세가 오랫동안 가장 흔한 유형의 임대차 관행으로 굳어졌다. 전세 제도가 전국적으로 활용되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하지만 금리 상승으로 전세 비용도 늘면서 전세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최근 외신은 한국의 전세 제도를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보면서 부동산 침체 때 전세 제도가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의 부담 ‘전세 리스크’

미국의 경제지 블룸버그는 지난달 24일 ‘이례적인 8280억 달러(약 1075조 원) 대출 시장, 한국의 주택 위험 확대’ 기사에서 한국의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전세 리스크를 소개했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기이한 임대차 관행’으로 촉발된 급격한 하락 위험에 처해 있다”며 “이러한 취약점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 대신 받은 초대형 보증금(전세 보증금)을 탕진하면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전세 제도는 부동산 소유자에게 레버리지 현금을 공급하면서 부동산 투기와 재정 불균형을 촉발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하락에다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세입자는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집주인의 경우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 보증금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전세는 집주인이 결국 가격을 대폭 낮춰 집을 내놓으면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블룸버그는 부동산 시장의 급격한 하락은 경제의 민간 부문 지출에 타격을 주면서 정부에도 부담을 주고 잠재적으로 내년 한국 총선에서 집권여당의 승리 가능성을 깎아먹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전세는 위기의 시기에 위험을 쉽게 증폭시킬 수 있다”며 “(전세 위기가)올해 한국 경제에 고금리나 잠재적 경기침체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독 한국에 전세 관행이 널리 정착된 이유는 무엇일까. 외신은 전세를 임대인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웠던, 한국의 초고속 성장 시절 유물로 봤다. 동의대 강정규 부동산대학원장은 “인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전세 제도가 발견되지만, 한국처럼 국가적인 제도로 굳어진 곳은 없다”면서 “과거 한국의 부동산 가격 상승 속에 목돈을 한꺼번에 마련해 다시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전세 제도가 널리 확산된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2030세대가 최대 피해자”

외신은 한국의 자산 가격 하락을 예상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청년 세대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의 사례도 조명했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2021년 서울에서 집을 산 한 30대 남성 사례를 언급하며 서울의 아파트 가격 폭락과 금리 상승 시대에 대출 상환 비용이 급증해 고통받고 있는 한국 젊은 층의 현실을 소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2021년 한국의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의 206%에 이른다. 한국의 주택 대출 중 60%는 변동금리 대출이다”면서 “금리가 오르면 가계 재정이 빠르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도 “한국의 전세 임차는 주택 소유 가능성이 낮은 20·30대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면서도 “과도한 부동산 투자로 파산한 임대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고 있어 젊은 세입자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자료를 인용하며 “지난해 실패한 전세 상환 보험 청구액은 1조 17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금리 상승으로 전세의 매력이 떨어지고 월세 계약의 증가 속에서 한국의 전세 제도는 존속할 수 있을까. 강정규 원장은 “월세 비중이 어느 정도 늘어나겠지만, 전세 계약도 급격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부동산 가격 반등이 일어난다면 전세 선호 현상이 재현되기 때문에 ‘전세 멸종’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부산일보〉에 말했다.

반면 영산대 부동산학과 서정렬 교수는 “전세 제도가 유지됐던 이유는 집값 상승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면서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고점 근처에 도달했고, 정점을 지나면 전세가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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