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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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경 경제부장

가덕신공항 추진 20여 년 만에 출발선
공공기관 추가 이전 10년 넘게 감감
대통령 공약에도 산은 이전 가시밭길
쉼 없이 생존 외쳐야 하는 지방 고달파

야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 요즘 자꾸 엉뚱한 지점에서 떠오른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미국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뉴욕 메츠 감독 시절 했던 말이다. 당시 꼴찌에 머물던 메츠는 그 해 디비전 1위에 올라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얘기했을 이 말은 다른 스포츠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서도 통용되며 자주 쓰인다. 그러나 지역의 숙원사업들이 지리하게(‘지루하게’의 비표준어) 추진돼 오는 것을 보면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것 같다. 베라가 말한 뜻과는 달리 ‘끝날 때까지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다.

2002년 김해 돗대산에서의 중국 민항기 추락사고 이후 김해공항 안전성과 포화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두된 신공항 건립은 20년이 넘은 이제야 사실상 출발선에 섰다. 당시 부산은 제조업 중심의 기존 산업이 몰락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만큼 부산항 신항 인근에 공항을 건립해 육해공 물류 트라이포트를 구축,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복안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공항 검토 지시로 논의가 본격화됐지만, 정작 흐름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구·경북까지 가세하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의 경쟁 구도가 됐다. ‘24시간 운영 가능하고 안전한’ 공항을 부산에 지어 성장 돌파구를 만들겠다는 당초 취지는 사라졌고, 지역 갈등만 격화됐다. 이명박 정부는 사업 추진을 백지화했고, 박근혜 정부는 신공항 추진 대신 기존 김해공항 확장을 결정했다. 다시 방향을 튼 건 문재인 정부 때였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폐기했고, 이후 가덕신공항 건설 특별법이 제정됐다.

한시름 놨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국토부는 지난해 4월 공사 기간이 긴 100% 인공섬 공항 안을 들고나왔다. 개항 목표는 2035년으로 잡았다. 신공항 추진에 계속 발목을 잡았던 국토부의 행보를 본다면 이 또한 지켜질지도 의문이었다. 인천공항 밀어주기를 위해 가덕신공항 건립을 계속 늦출 것이란 우려도 컸다. 조기 개항해 성장의 지렛대로 삼고자 했던 지역민의 실망은 컸고, 좌초될 수도 있다는 일각의 염려도 있었다.

다행히 부산의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가 신공항 추진에 가속도를 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국토부가 지난달 2029년 말 조기개항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육상과 해상에 걸쳐 활주로를 배치해 공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기로 했다. 엑스포 유치에 있어 가장 큰 취약점으로 꼽혔던 접근성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부산의 최대 숙원이었던 신공항 문제도 한시름은 덜게 됐다. 돗대산 사고 취재 이후 20여 년 동안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신공항이 추진돼 온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선 ‘묵은 숙제가 해결됐다’는 약간의 안도감도 느껴진다. 물론 여전히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끝날 때까지 지역에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큰 현안은 또 있다.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던 공공기관 2차 이전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수도권 인구 쏠림 현상 해결과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단해 과감히 추진했던 공공기관 이전 추진 후,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2차 이전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물론이고, 당연히 시동을 걸 거라 예상했던 문재인 정부 때도 진척이 없었다.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수도권 표심 눈치만 봤다.

공공기관 이전이 지방 생존의 근본 해결책은 안 될 것이다. 1차 이전 이후에도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는 등 지역 경제에 큰 보탬이 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부산으로선 금융기관 집적으로 금융중심지란 구색은 갖췄고, 산업은행 등의 추가 이전으로 실질적인 금융중심지로의 성장과 함께 산업 생태계를 변화시킬 마중물 역할을 기대한다.

윤 대통령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으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 또한 국회에서 꽉 막혔다.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국가 균형발전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민주당과, 특히 부산시장 선거에 나서기도 했던 김민석 의원이 몽니를 부리듯 반대하고 나서는 데 대해 지방은 답답하고 허탈하다. 국토부는 조만간 2차 이전 기본계획을 수립해 지방으로 이전할 360개 이전 기관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때도 민주당이 대놓고 반대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순탄하게 이전이 진행될지는 걱정스럽다. 이전이 마무리될 때까지 지방은 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할 수밖에 없다. 생존하기 위한 지방은 고달프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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