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봄꿈 / 임후성(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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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고 가지각색의 애인과 선생이 넘쳐났을 때 술 마신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잠이 깼을 때 술 마신 자리였고 얼굴 위 가로수 검은 나뭇가지에 낮에 본 꽃이 접혀 있었다 술을 마실 때에도 사이렌 소리에 애인들을 집에 돌려보냈을 때도 잠이 들었을 때도 아무런 꿈 꾸지 않았다 꿈을 꾸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달이 절벽을 기어오르던 중이었고 내게선가 혹은 하늘에선가 미소가 지어졌다 주먹을 쭉 내밀어 시계를 볼 때처럼 경찰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젊은이를 찾아온 경찰은 왜 늙어 있는가? 선생님들은 어떻게 되셨는가? 애인들은 어디서 결혼했는가? 내 얘기에 빠트린 게 있는가?

- 문예지 〈계간문예〉(2023년 봄호) 중에서

벚꽃이 떨어지는 봄날. 이 시를 읽었다. 연극연출가이기도 한 시인은 시도 극적인 시를 쓴다. ‘내가 젊고 가지각색의 애인과 선생이 넘쳐 났을 때’처럼 꿈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젊고 술과 꽃이 충분한 봄날에서 노닐고 있다. ‘달이 절벽을 기어오르던 중’이라는 시적 표현에 어느샌가 ‘주먹을 쭉 내밀어 시계를 볼 때처럼 경찰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같은 극적인 상황을 대비하는 솜씨가 놀랍다. 게다가 경찰은 늙어있고 선생님들과 애인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짧은 시 한 편에 드라마가 펼쳐진다. 여기에서 시인은 더 나아가 ‘내 얘기에 빠트린 게 있는가?’라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봄날의 물음에 잠시 환해진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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