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 바탕·검은 사선 안 돼” 버버리 엄포에 ‘한 학교 두 교복’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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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권 소송 압박에 교육청 수용
내년부터 부산 4개 중·고교 해당
체크무늬 유지,색상 등 변경 계획
신입생 새 디자인, 재학생 그대로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상표권 침해를 주장해 체크무늬 교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부산 한 학교의 변경 전(왼쪽)과 변경 후 교복. 부산시교육청 제공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상표권 침해를 주장해 체크무늬 교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부산 한 학교의 변경 전(왼쪽)과 변경 후 교복. 부산시교육청 제공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색 사선이 그어져 명품을 떠올리게 하는 체크무늬 교복이 앞으로는 사라질 예정이다. 체크무늬의 ‘원조’ 격인 세계적 명품회사 버버리가 국내 학교 교복의 디자인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4일 부산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내년부터 부산의 4개 중·고교가 교복을 변경한다. 학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교복이 변경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4개 학교의 교복은 모두 검은색 사선과 베이지색의 조화로 명품을 연상케 하는 체크 무늬 디자인이 특징이다. 주로 옷깃, 소매 치마 무늬 등에 체크무늬가 있다. 4개 학교는 내년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새로운 디자인으로 교복을 바꾸기로 했다. 4개 학교는 기존 재학생과 같은 학교임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체크무늬를 유지한 채 베이지색 배경을 군청색으로 바꾸거나 사선 개수를 늘리는 등의 ‘리폼’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례적으로 같은 학교에 ‘한 학교 두 교복’인 경우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전례 없는 교복 교체는 버버리가 전국 200개 학교에 상표권 침해 문제를 제기해 벌어졌다. 버버리는 2019년 한국학생복산업협회를 통해 국내 일부 학교 교복에 사용돼 온 체크무늬가 상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학생복산업협회에 따르면 부산 4곳을 포함해 국내 200여 개 학교가 버버리가 문제 삼는 베이지 바탕, 검은색 사선이 섞인 체크무늬를 교복 디자인으로 채택하고 있다. 버버리는 자체 상표권 침해 기준에 따라 25가지 체크무늬 유형을 가지고 있는데, 자체 기준을 협회 등에 보내 교복 변경이 이뤄지지 않을 시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2년가량 협상을 벌인 한국학생복산업협회는 지난해 5월 버버리와 극적 합의에 도달했다. 2023년부터 체크무늬 교복을 변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행정적·물리적 소요 시간 등을 고려해 2024년까지 1년 변경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버버리는 재학생의 기존 교복은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8월 협회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통보 받은 시교육청은 부산의 중·고교에서 학교 교복 디자인 전수 조사를 진행했다. 시교육청은 4개 학교가 버버리의 상표권 침해 기준에 해당한다고 보고 4개 학교와 논의 끝에 내년부터 교복을 바꾸기로 했다.

버버리는 1998년 한국에 체크무늬 상표권을 등록한 뒤 주요 패션 업체들과 소송전을 벌이며 상표권 지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06년에는 빈폴의 체크무늬, 2013년엔 닥스의 체크 셔츠, 2014년엔 쌍방울의 속옷 디자인이 버버리의 소송 대상이 됐다. 이 중 빈폴의 체크무늬만 ‘한국 전통 가옥의 창살 무늬를 모방해 디자인했다’는 이유로 버버리를 상대로 승소했다.

일선 학교와 교육청은 소송을 통해 교복을 유지할 명분이나 실익이 약해 소송을 통한 맞대응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자칫 일선 학교와 세계적인 기업이 소송전에 휘말릴 수도 있는 만큼 교복 물려 입기가 어려워진다는 민원, 행정적 소요가 크다는 반발에도 디자인 변경을 진행하게 됐다”며 “올해 하반기에도 체크무늬 교복 변경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일선 학교와 논의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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