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13) 암울한 시대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 김영덕 ‘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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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1931~2020)은 충남 서산 출신의 화가이다. 반일 민족주의적 성향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일본 미술대학 진학을 위해 1950년 4월 부산에서 밀항하려 했으나 한국 전쟁이 발발함으로 인해 계획이 무산되었다. 김영덕은 부산에 머무르며 당시 전쟁 취재를 위해 기자를 급하게 구하던 〈국제신보〉(국제신문의 전신)에 입사하게 된다.

기자 생활을 하며 김영덕은 젊은이들의 시체를 싣고가는 트럭, 좌익 청년에 대한 경찰의 즉결 처분 광경 등 전쟁의 참상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작품 제작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김영덕은 신문사에서 일하며 일본의 신문이나 책에 소개된 국제 미술계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 신문에서 본 프랑스 ‘롬므 떼모앙(L’homme Temoin) 그룹’의 창립 선언문은 그의 작품 제작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1956년 3월 추연근(1924~2013), 하인두(1930~1989)와 함께 ‘청맥(靑脈)’ 창립전에 참가한다. 청맥은 부산의 두 번째 서양화 동인으로, 구상적 표현주의 양식으로 전후시대를 증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립됐다. 3회 전시를 끝으로 청맥이 해체하자 김영덕은 1960년 서울로 이주한다. 그는 1960년부터 1963년까지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서 활동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 생계를 위해 최인호 작가의 ‘별들의 고향’, 박경리 작가의 ‘토지’ 등 신문 연재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작가는 1967년 중단했던 그룹 활동을 재개하며 구상전의 창립 회원으로 참여한다.

김영덕은 1960년대 이후 박제되어 탁본처럼 만들어진 인간의 시신을 형상화한 ‘인탁(人拓, 인간 탁본의 줄임말)’ 시리즈나, 무속을 소재로 죽은 자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제작한다. ‘향(鄕)’ 연작에서는 고향의 풍경을 통해 작가의 염원이나 이상향을 드러냈다. 이후 한국 지도, 굿판을 상징하는 오방색 띠, 정화수 등을 배치해 통일을 염원하는 작품을 제작한다.

1958년에 제작된 작품 ‘태고’는 인간의 모습이 아닌, 메마르고 뒤틀린 형상의 인골을 보여준다. 한국 전쟁 이후 작가는 이처럼 인간의 형상이 사라진 인간의 모습, 건어물, 메마른 식물의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주로 그렸다. 작가는 이것이 저항과 반발, 그리고 자포자기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은유라고 회고했다.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발발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물음이라는 주제와 거친 마티에르의 그로테스크한 표현 방식은 유럽 앵포르멜 회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진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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