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바다 빼앗긴 조선, 외교 주도권 빼앗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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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최근 윤 대통령 방일 후폭풍 계기
일본의 문제 해결 방식 다시 주목

한 수 한 수 면밀히 계산하고 따져
현 정부 ‘통 큰 결단’ 방식과 대조

전혀 다른 양국 접근법 먼저 알아야
한·일 외교 실익의 주인 될 수 있어

조선이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에 병합된 날은 1910년 8월 29일이다. 그보다 앞서 1905년 11월 9일에는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됐다. 일본군은 1904년 조선에 주둔하였다. 그 사이에 화폐 정리 사업을 통해 조선을 일본 화폐권에 예속시키고, 고종의 친위대도 해산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육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조선의 바다에 대한 침탈은 이보다 훨씬 먼저 일어났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래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자, 이들의 먹거리 확보를 위해 근해 어업이 활성화되었고, 1880년대엔 남획의 결과로 일본 근해의 수자원이 고갈됐다. 일본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의 바다를 노리기 시작했다.



1893년에 〈조선통어사정〉이 발간됐는데, 이 책에서 일본은 이미 조선 해상의 어업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외국 선박들이 동해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므로, 특히 조선해 중에서 그 입구에 해당하는 대마도와 부산 근방을 경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인 1905년 러시아의 발트함대가 바로 이곳에서 일본 연합함대와 맞닥뜨렸다.

1894년에는 〈조선국원산출장복명서〉가 간행되었다. 일본 어부들의 남획으로 해삼이 이미 조선 어장에서 고갈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한편, 대신 떠오르던 강원도와 함경도 어장에서 조업할 것을 권유하였다. 1897년에는 〈조선어업협회 순라보고〉가 간행되기 시작했고, 1900년까지 13회에 걸쳐 보고가 이뤄졌다. 일본 어부에게 어업 현황 파악 등 편의를 제공하고, 조선 어부와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1903년에는 일본 우익 조직인 흑룡회가 〈한해통어지침〉을 간행하였다. 이 책은 조선 연해에 근거 항구를 정하고, 일본인들이 이곳에 이주해 영주하면 국가와 개인에게 모두 이익이 될 것이라고 설파했다. 1908~1911년에는 〈한국수산지〉 4권이 간행됐다. 제목은 수산지이지만, 조선 지리지와 다름이 없고, 조선 팔도의 모든 포구는 물론 어선과 어망의 수까지 파악하였다.

조선의 육지 병합은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최종 결과일 뿐이다. 1880년대부터 일본 어부들이 조선의 바다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는 각종 정책을 마련했다. 정부가 앞장서서 조선의 어장 상황, 유망한 수산물 품목을 조사했다. 조선의 바다에서 어로에 종사하는 어부들은 당장은 수산물을 획득해 일본 경제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유사시 군함을 위한 물길 안내인이 될 수도 있고, 직접 일본 해군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조선은 이처럼 육지 이전에 먼저 바다를 모두 빼앗겼다. 일본의 침탈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숨통을 조이듯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되었다. 이것이 일본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장기나 바둑을 두듯이 한 수 한 수를 따져 본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일본을 방문해 강제동원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하겠다는 ‘통 큰 결단’을 보여 줬다. 그러나 일본의 반응은 미온적인 정도가 아니라 우리 정부의 뒤통수를 때리는 격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일단 한 번 크게 질러 보는 우리의 문제 해결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만 해결하면, 다른 모든 사안도 잘 풀릴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강제동원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연내 해결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우리 측에서 제시한 내용이었다. 이때 아베 전 총리는 분명하게 “사죄는 끝났다”라고 말했다.

여러 매스컴에서 윤 대통령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일본 측이 추가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기시다 내각의 입장은 확고하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것뿐, 더 이상 사과는 없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이제 겨우 2015년 단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 단서가 마련되었을 뿐이다. 독도 문제, 화이트 리스트 등의 문제는 강제동원과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일본으로서는 5년마다 국가의 외교 정책이 180도로 바뀌는 나라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지나면 이번 정부의 약속도 최종적이기는커녕 다시 휴지 조각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뒤통수를 계속 얻어맞고 있는 쪽은 자신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외교의 기조는 유지되어야 한다. 임기 중 성과에만 매몰돼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외교는 명분의 노예가 아니라 실익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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