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부산 월드엑스포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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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부산의 미래 떠받치는 두 개의 축
엑스포의 심장인 부산항 북항
영욕 간직한 역사의 공간, 1부두
최근 문화재 등록 절차 지지부진
부산시 1부두 원형 보존 노력 보태
유네스코 최종 등재도 일궈 내야

부산세관 앞바다가 매립되기 이전의 2018년 부산항 제1부두 일대 모습. 1부두의 원형인 돌제(해안에서 직각 방향으로 들어선 구조물)는 아직 남아 있지만 세관 앞 안벽은 매립되어 찾아볼 수 없다. 부산일보DB 부산세관 앞바다가 매립되기 이전의 2018년 부산항 제1부두 일대 모습. 1부두의 원형인 돌제(해안에서 직각 방향으로 들어선 구조물)는 아직 남아 있지만 세관 앞 안벽은 매립되어 찾아볼 수 없다. 부산일보DB

부산항 북항은 그 자체가 부산의 상징이다. 미래 비전을 보여 주는 부산월드엑스포의 심장인 동시에 오늘의 부산을 만들어 낸 역사적, 상징적 공간이다. 북항의 근원은 제1부두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수탈의 입구, 한국전쟁 때 유엔군 투입과 유엔 원조의 통로, 갈 곳 없었던 피란민들의 삶터, 광복 후엔 전쟁과 가난을 극복하고 산업화의 길을 연 수출길의 출발점. 대한민국의 아픔과 희망이 녹아 있는 근현대사의 묵직한 현장이 1부두다. 지금은 북항재개발을 통해 원도심 부활을 꿈꾸는 거점이다.

일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1부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이미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결정이 그것이다. 잠정목록에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9점이 포함돼 있는데 그중 핵심이 1부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최종 등재는 사실 엑스포 유치에 비견될 만한 업적이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1부두의 문화재 등록이 선행돼야 하는데 현재 소유권자인 부산항만공사(BPA)가 여기 동의한 상태다. 소재지 관할 구청인 중구에 ‘1부두 등록문화재 신청 건’에 대한 검토 의견 제출을 요청한 게 지난해 10월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몇 달째 일의 진척이 없다. 알고 보니 중구청은 1부두의 문화재 등록을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핵심적인 이유다. 중구의 입장은 지난달 17일 지역방송에서도 명확하게 확인됐다. 중구청장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이렇다. “유네스코 등재가 중구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회관이나 구민 체육시설 건립 같은 중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답을 부산시가 내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원도심 침체가 워낙 심각하고 경기 활성화가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재 등록이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시각은 너무 일면적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향후 이 지역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어쩌면 중구 번영의 일등 공신이 될지도 모른다. 존재하지도 않는 1부두 일대의 상권을 미리 상정해 경기침체 우려를 말했는데 논리의 비약이다. 특정 지역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그것만 보는 근시안적 관점은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주민을 위한 시설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면 다른 장소를 물색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1부두는 원형을 보존해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기로 돼 있다. 부산항 북항 1단계 재개발 10차 사업 계획 내용이 그렇다. 이에 따라 1부두의 소유·관리권은 올 상반기 중 BPA에서 부산시로 넘어간다. BPA는 최근 “이른 시일 안에 부산시에 재산권 이관 신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공원은 문화유산의 현상 유지 및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공원·녹지 세부기준 지침을 담은 국토교통부 훈령에 엄연히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체육회관 건립 등을 요구하는 중구청장 발언의 배경은 무엇일까. 결국 부산시가 1부두 보존에 대한 입장을 바꾼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검토 의견 제출이라는 간단한 후속 절차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인 이유를 찾기 힘들다. 역사공원이 예정된 대로 조성되지 않는다면 세계유산 등재는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취지에 안 맞는 시설물이 1부두에 들어서면 아예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부산시가 피란수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오랫동안 기울인 노력을 스스로를 부정하는 꼴이다.

유네스코는 전쟁이나 난개발 등으로 보편적 가치가 손상될 경우 이미 등재된 세계유산도 해제한다. 영국 해양도시 리버풀이 대표적 사례다. 항만 시설과 건축물의 보존을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이후 축구장 건설 등 재개발이 경관을 크게 훼손했다는 판단을 받아 등재가 해제됐다. 하물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부산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부두 역사공원은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열린 공간으로 두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지속 가능한 부산의 성장을 떠받치는 두 개의 축이 있다. 그 하나가 월드엑스포 유치라면 또 다른 하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다. 엑스포의 무대인 북항 일대가 인류의 비전을 비추는 미래 개척의 공간이라면, 역사성과 장소성을 상징하는 1부두는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최소한 남겨둬야 할 보존의 공간이다. 엑스포 유치와 동일한 수준의 힘을 세계유산 등재에 쏟아야 하는 이유다. 국제도시 부산의 역량은 명실상부 월드엑스포를 유치할 수준이다. 세계에 부끄럽지 않은 문화적 안목과 배포도 함께 갖춰야 한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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