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애물단지 된 방역 장비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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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용했던 것은 쓸모가 없어지고, 새것은 점차 낡아진다. 따지고 보면 세상 만물이 이와 같지 않은 것은 없다. 결국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의 상태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바로 열역학 제2 법칙으로, 우주 만물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들어 코로나19로부터 완전한 탈출과 함께 유용성이 급격히 사라진 코로나 방역 장비나 물품을 보면서 엔트로피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한때는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었으나, 사정이 바뀌자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물건들이다. 코로나19가 남긴 쓰레기인 셈인데, 자연 세계나 인간 세계나 할 것 없이 ‘공짜는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마스크 해제 등 코로나로 인한 제약이 완전히 사라진 최근에는 학교 교실이나 급식실에 설치됐던 칸막이가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코로나 기간 각급 학교의 급식실에 설치된 칸막이만 470만 개로 추정되고, 교실에 설치된 것까지 합하면 1000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정부가 올해 새 학기 들어 철거 권고는 하면서도 처리 지침은 마련하지 않아 이의 처리를 두고 학교가 혼란에 빠진 것이다. 많은 물량을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고 재활용 처리도 어려워 쉽게 버리지도 못하니,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코로나 시기를 상징하는 방역 물품인 마스크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착용하는 마스크는 땅에 묻든, 태우든, 어떤 방식이든 환경을 파괴한다. 땅에 묻을 경우 완전히 분해되는 데 45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런 폐마스크가 코로나 3년간 국내에서 하루에 거의 2000만 개씩 나왔다. 전 세계로 넓히면 엄청난 양의 쓰레기다.

이 외에도 공공 기관이나 음식점 등에서 필수 장비로 갖춰야 했던 열화상 카메라와 열 감지기, UV(자외선) 살균기, 비말 차단 아크릴 가림막, 손 소독기 등 한둘이 아니다. 코로나 이후 재활용 방안은 차치하고 보관할 장소조차 찾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건, 지자체건, 어디에도 코로나 방역 장비나 물품의 처리를 고민하는 곳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다고 신경을 쓰지 않는 탓이다. 언젠가 낡고, 쓸모가 없어지는 게 세상사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두 손 놓고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지 답답하고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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