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떠돌이 개를 만나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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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산책하다가 떠도는 개 발견
개에게 더 큰 불행 될까 우려
신고하려고 하다가 그만둬
홀로 둔 개 생각에 다시 찾아 나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는 없어
모두 무사하기 바라는 마음뿐

꽃이 좋아 떠난 산책이었다. 큰길은 봄꽃을 즐기는 이들로 만원이어서, 사람이 덜 다니는 샛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개는 한때 누군가의 사랑을 듬뿍 받은 개처럼 보였다. 털도 다듬어져 있었고, 사람 곁에서 큰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불안한 듯 주변을 살피고 있었고, 샛길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목에는 목줄이 없었고, 주변에는 견주로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잠시 서서 뒤따라올 누군가를 기다렸다. 하지만 개를 뒤따르거나 부르는 이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개는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개를 이상한 듯 바라보았지만, 다가가기보다는 걸음을 옮기기에 바빴다. 개와 얽혔을 때 생겨날 귀찮은 일들을 피하려는 듯. 결심을 하고 신고 절차에 들어갔다. 신고를 접수하는 직원은 겉으로는 친절했지만, 속으로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곳 지리를 설명해도 잘 모르겠다는 말만 늘어놓으며, 왜 귀찮은 일로 바쁜 자신을 괴롭히냐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겨왔다. 그렇지 않아도 유기견을 신고하는 일에 확신이 없던 나에게, 무성의한 직원의 반응은 강한 불신을 가져왔다. 신고가 자칫하면 개에게 더 큰 불행을 안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한 여인이 강하게 부탁을 해왔다. 구청에 신고하는 것이라면, 멈추어달라는 것이었다. 여인은 개의 입양처를 구하고 있다면서, 떠돌이 개가 관련 기관에 잡히면 오히려 일찍 안락사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인간들은 떠돌이 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유기견 센터를 운영하지만, 유기견 센터에 개가 많다는 이유로 그 개들을 죽이기도 한다. 법적 보호 기간 안에 분양된 개들은 횡액을 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개들은 그곳에서 죽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개를 찾고 있을 누군가와 개의 미래 견주(유기견 입양 희망자)를 생각하면, 개는 일단 유기견 센터로 가야 했다. 신고를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일단, 신고를 멈추기로 했다. 흔히 사람들은 이럴 때 문제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어떤 사람들은 유기견 보호센터가 개들을 안락사시키는 모순에 대해 성토할 것이다. 다른 이들은 유기견 보호센터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떠돌이 개가 생겨난 것이 문제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고민과 토론도, 눈앞의 개를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그저 우리는 개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기를 바라왔고, 그냥 그 개들이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라왔으며, 어쩌면 그 개들로 인해 더는 고민하지 않기를 바라왔을 뿐이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개의 입양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세상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물론 이 결정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개는 아직 아주머니의 개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날, 문득문득 개가 생각났다. 할 수 없이, 밤늦게 개를 찾아 나섰다. 혹여,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그곳에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그곳에서 개를 다시 본다면, 나 역시 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는 그곳에 없었다. ‘자리를 쉽게 바꿀 개가 아니었는데…, 어디로 간 것일까.’ 아침에 하다 만 신고와 하다 만 대화가 생각났다. 어쩌면 귀찮아하던 직원이 개를 찾아 붙잡았을 수도 있고, 더는 개를 밖에 두는 일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아주머니가 데리고 갔을 수도 있다. 그 어느 쪽도 안심만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저, 내일 다시, 와보는 수밖에. 봄날의 꽃은 그새, 더 지고 있었다. 모두가 무사하기를 바라 뿐이었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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