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는 게 뭐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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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진 동명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대학교에서 신입생 1학년 대상으로 ‘영유아 발달’ 교과목을 강의한 지가 20년이 다 되어 간다. 30대 부임해서 처음 교단에 설 때 관심사는 오로지 영유아기 아이들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 전쟁을 치를 때라 이 과목이 온통 내 이야기였던 것이다. 자녀들이 자라고 사춘기가 오고, 또 그들이 청년이 되고 나니 내 관심은 성인과 중년, 노년기로 점차 확장되어 가는 것에 어쩔 도리가 없다. ‘발달’이라는 과목이 전 생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학문이라 전지적 연구자 시점으로 내 관심의 주제도 진화 중이다. 연구자로서, 교수로서 거역할 수 없는 요즘 내 삶의 화두는 그래서 성공적 노화, 창의적 나이듦, 이런 주제로 이동 중이다. 유아교육과 교수가 이리도 진지하게 노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미경 렌즈를 해마다 조금씩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고령사회로 들어섰다. 초고령사회도 이제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관련 기사, 도서, 유튜브에서도 고령사회를 대비하는 다양한 노하우나 자산 관리 채널이 인기다. 100세까지 내 손으로 해먹는 100가지 음식, 100세까지 든든한 건강보험, 100세까지 쓰는 무릎 만들기 등등. 100세까지 산다는 것이 과연 축복일지, 재앙일지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적 노화인지 고민하던 차에 ‘시크한’ 일본 작가 사노요코의 <사는게 뭐라고>로 번역된 수필집을 만났다.

이미 국내에 <죽는게 뭐라고> <자식이 뭐라고> 등 뭐라고 시리즈로 잘 알려진 사노요코는 그림책 작가이면서 에세이스트로 유명하다. 나이듦에 대한 연구 주제를 가지고 온갖 도서와 논문을 들추면서 학문적으로 이를 재규정하고자 하던 차에, 사노요코의 책을 보면서 나는 유쾌하고 통쾌했다. 이렇게 매력적인 할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이 경이로왔다.

2010년에 이미 고인이 되셨다는데 책을 다 읽고 난뒤 “그래서, 사는 게 뭐예요?”라고 하늘에 있는 그녀를 당장 만나서 묻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괴상하면서도 웃기고, 짠하면서도 박력있는 그녀가 할머니라는 사실 앞에 환호했다. 나이듦을 인정하고 솔직하고 거침없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늙어가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다. 삶의 끝을 담대하고 유쾌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그녀의 태도가 의연하고도 짠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녀처럼 호기심 많고 솔직하고, 자기 표현에 인색하지 않고 순수하게 노인이 되어가는 변화. 이것이야 말로 창의적 노화라는 생각에 지난 겨울 방학 내내 연구실 책상 위 10층 탑으로 쌓여져 있던 노화 관련 논문들이 감히 몇 줄로 요약되어 질 것 같은 묘한 흥분을 느끼기도 했다.

늙으면 다들 이렇게 변하는 것이다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투병 중에 원고 마감을 지키고, 똑바르게 걸으려고 신경쓰고, 그냥 일상을 즐겁게 살려 했던 그녀처럼 우리가 우리 색깔로 편안하게 그리고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노화가 아닐까? 이 책은 팔순을 훌쩍 넘긴 친정엄마가 읽고 내게 빌려준 책이었다. ‘넌 이 할미처럼 이렇게 멋지게 살아라’하면서 <사는게 뭐라고>라는 책을 넘겨 주시던 엄마의 주름진 손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도 아직 안 늦었어. 이 할머니처럼 자식 걱정, 남편 걱정, 그만하고 멋지게 살아요, 사는 게 뭐라꼬, 엄마!”라고 되돌려 답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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