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사람이 벚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신정민(1961~ )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상략)

그가 걸어 들어간 벚나무 아래서

내 안에 내리고 있는 새벽 빗소리를 들었다

질 나쁜 종이에 연필심 긁히는 소리

전국의 벚꽃 개화 시기가 조금씩 달랐던 건

사람들이 집을 떠난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죽어도 가로수로 서 있을 사람

혹여 누군가 활과 화살을 만들기 위해 이 나무를 베어낸다 할지라도

바람에 날리는 우수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던 화려한 시절

짧아서 아름다웠던 생

바구니를 메고 있는 새벽이 벚나무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시집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2019) 중에서


비 개인 후 벚꽃들이 거의 떨어졌다. 봄날은 간다. 시인은 이제 ‘사람이 벚나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꽃잎이 가는 시간은 시인의 시구처럼 ‘

질 나쁜 종이에 연필심 긁히는 소리

’가 들릴 듯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여기에 벚꽃 개화시기가 다른 건 사람들이 집을 떠난 시간이 달랐기 때문이라니! 좋은 시는 이렇듯 다르게 쓰고 다르게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구의 기후 변화로 올해는 벚꽃 개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빨랐다. 이제 곧 초록이 거리를 차지할 것이다. 꽃잎 때문에 검어졌던 벚나무도 차츰 회색을 띠고 있다. 성윤석 시인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