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예술, 변형, 해석 그리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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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미술 작품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변형’과 관련된다. 종이 위에 그린 그림과 나무를 깎아 만든 형상 등이 그저 단순한 물질적 재료인 종이와 나무로부터 탈바꿈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때, 그것은 정체성과 가치에 있어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러한 변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설명이나 이야기가 필요하다. 실험적이고 난해한 현대 미술에서 그러한 변형을 정당화하기 위한 내러티브는 더욱 중요해진다. 예술가가 직접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사물이 예술 작품이 되고, 외관상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던 어떤 사물과 똑같은 것이 미술 작품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해석과 비평이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변형을 통해 태어난 미술 작품은 탄생 이후에도 끊임없이 해석에 의해 다시 변형된다. 해석은 우리가 미술 작품을 보는 방법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사실상 우리가 일반적으로 ‘해석’이라고 부르는, 예술 작품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미술 작품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해석되는 생명체

전시 기획의 중요성도 그때 빛을 발해

미술관의 전시 역시 작품의 의미를 찾고 해석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을 변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다. 전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 작품에 대해 특별한 맥락과 새로운 환경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기획 의도 및 주제 설정, 출품 작품 및 참여 작가 구성, 작품 조합, 병치하는 방식, 특별한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강조와 주목, 특권적인 위치 부여, 전시 진행 순서와 관람 동선, 공간 연출 디자인 등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시기획이란 어떤 작가와 작품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해석을 유도하는 것이다. 30여 년간 영국 테이트 미술관 관장을 지내면서 그곳을 세계 최고 미술관 중 하나로 키워 낸 니컬러스 서로타는 “전시를 통해 작품들을 함께 보여 주는 것은 그 예술가의 마음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관계를 정립하면서 그 작품들에 대해 기획자가 해석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2014년 한국 방문 당시 인터뷰에서 미술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장품, 재정 지원, 미술관 건축물 같은 것보다도 큐레이터의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때의 상상력은 “작가와 긴밀히 협력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노력”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와 같이 그가 큐레이터의 상상력을 강조한 이유는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새롭고 독창적인 기획을 통한 작품에 대한 풍부한 의미 발견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러 작품들이 한 장소에 함께 조합되어 전시되면 그것들이 개별적으로 따로 보일 때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며 더 나아가 그것은 독특한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게 된다. 같은 작품일지라도 서로 다른 전시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걸릴 때, 그 작품의 의미는 달라지고 확장되면서 새로운 해석이 도출될 수 있다. 작품의 병치나 조합뿐 아니라 작품을 보는 순서 역시 특별한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것은 특히 전시 전체의 이면에 흐르는 도입(발단), 전개, 발전, 절정, 결말과 같은 기승전결의 극적인 내러티브를 내포하게 된다. 미술관 전시를 보면서 걷는 것은 이러한 내러티브를 경험하는 것이다. 내러티브 전개에서 큐레이터는 가장 강조하고 싶은 작품을 처음이나 마지막, 혹은 어떤 특별한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그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공간 디자인과 작품 배치 등과 같은 전시의 연출 방식도 작품의 특별한 해석을 만들어 내고 미술사에서의 의의 등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전시가 아닌 형태로 보일 때는 드러나지 않던 의미를 생성해 낸다. 작품들을 특별한 조합과 순서로 보여 주고 함께 병치시키는 것 그리고 작품을 두는 위치, 전시장의 색조와 밝기, 조명을 통한 강조 등과 같은 공간 구성은 작품이 이해될 수 있는 일종의 새로운 맥락을 조성한다.

작가가 작품 속에 만든 어떤 특징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중요한 것으로 재평가되거나 새롭게 이해될 수도 있는데 미술관의 전시가 그러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제작 당시에는 의미 부여되지 못했던 작품들이나 작품의 어떤 측면이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당대의 이슈, 동시대적인 관심사와 관련하여 미술관 전시에 의해 재해석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또한 미술관 전시는 종종 미술 작품이 보이는 방식을 과학 기술 등의 발전에 의해 개선한다. 사진, 동영상, 가상현실 등과 같은 매체의 발달 역시 오래된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만들 뿐 아니라 그것은 미술관 전시의 주제 및 형식의 변화도 가져온다. 그래서 하나의 미술 작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발견은 결코 끝날 수 없는 무한한 발전과 변화의 과정이다. 미술 작품은 창작자의 처음 의도와 생각대로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확장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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