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동천, 지역회생의 시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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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 과 교수

도시, 개발·재생 패러다임 교차
부산 문제의 핵심이 동천

바닷물 방류하는 방식 ‘야릇’
윗물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

사회·환경·문화적 가치 따져
녹색·청색 어울리는 도시로

우연으로 점철된 게 삶이다. 청소년기를 서면과 전포동 일대에서 보내고 대학을 마친 이후에 첫 직장으로 동천 인근의 중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70년대 중후반과 80년대 전반의 일이다. 여름이 오면 더위를 감내하느냐 악취를 받아들이느냐,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동천은 코를 감싸며 바쁘게 천변을 지나치던 기억으로 나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다. 또한 우연이겠지만 책을 정리하면서 〈부산문화 스토리텔링 개발사업 자료집〉을 발견하고 그 속에 담긴 세 편 가운데 하나인 ‘동천에 배 띄우다’(곽소록)라는 작품을 접하면서 과연 배가 다니던 옛날 어촌 동천과 앞으로 배가 다닐 미래의 동천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부산의 도시 문제의 핵심에 동천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천을 살리는 일이 지역 회생의 시금석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도시는 개발과 재생의 패러다임이 교차하는 양상을 보인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피란수도 유산사업, 감천 문화마을, 서부산 낙동강 유역 개발, 북항 재개발 등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통하여 살기 좋은 도시를 향한 디자인을 지속하고 있다. 수직화하는 아파트단지가 전망을 가로막으면서 그 지속가능성이 훼손되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생각하면 안타깝다. 낙동강 유역은 가덕도 신공항을 위시하여 대규모다. 녹색의 생태와 푸른 바다가 접속하는 영역으로 이도 또한 부산의 내일을 전망하게 한다. ‘그린 어바니즘’과 ‘블루 어바니즘’이 조화롭게 결합하는 그랜드 디자인이 되기를 염원한다. 2030 월드 엑스포의 기대와 더불어 북항 재개발의 꿈도 한껏 부풀었다. 바다와 공존하는 도시의 미래가 활짝 열리고 있다.

주지하듯이 모든 하천은 바다로 모인다. 강은 육지 속의 바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다. 담수와 해수 그리고 이 둘이 만나는 기수 지역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인위적일 뿐이다. 모두 살아 있는 생명의 흐름이다. 한때 바다가 육지의 모든 오수와 폐수를 정화한다는 거짓 신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흔적의 하나가 낙동강 하구를 경유한 분뇨처리시설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실제로 도시의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도시화 과정에서 하천을 콘크리트로 덮어 도로를 만들었기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흔히 복개(覆蓋)라고 부르는데 본디 말은 ‘부개’이다. 복개된 하천으로 공장과 집에서 흘려보낸 물이 그 속에서 악취를 내면서 썩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시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문제로 가득 채워져 있다.

동천의 실태는 ‘숨쉬는 동천’(대표 이용희)이라는 민간기구의 활동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부산진구, 남구, 동구에 걸쳐서 여러 갈래의 지천이 모여 바다를 향하는 동천을 살리는 일은 비단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북항을 재생하는 일과 이어진다. 이러니 백양산에서 발원하고 당감천, 가야천, 부전천, 전포천, 호계천 등이 합류하여 바닷물과 만나는 동천이야말로 그린 스마트시티, 해양도시로 가는 부산의 열쇠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동천의 수질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바닷물을 끌어 들여와 방류하는 방식(이를 ‘해수 도수’라고 한다)을 선택하여 복개되지 않는 하류 구간을 희석하여 악취를 줄이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이는 어린아이조차 다 아는 말인데, 윗물은 두고 아랫물만 고쳐보려는 행위는 실로 맹목이 아닐 수 없다. 이마저도 최근 해수도수관이 파열하면서 동천 여기저기에서 검게 썩은 바닷물이 솟아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많이 오염된 하천을 이보다 덜 오염된 바닷물을 섞어 그 오염 수치를 내리겠다는 발상이라서 기이하다고 하겠다. 이참에 광범하게 발생하고 있는 오염원의 처리와 지천의 물 순환 관리, 복개도로 걷어내기, 생태 공원 조성 등과 같은 발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겠다.

티머시 비틀리는 ‘그린 어바니즘’과 ‘블루 어바니즘’에 이어서 ‘바이오필릭 시티’ 개념을 전파하고 있다. 그가 주창한 개념이 우리 부산에 적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북항 재개발이 진행되고 마침 ‘55보급창’ 이전이 거론되니 뭍과 바다를 잇는 살아 있는 연안 도시를 실현할 수도 있겠다 싶다. 바이오필릭 시티는 에드먼드 윌슨이 말한 생명체(bio)에 대한 사랑(philia)을 도시에 가져온 개념이다. 생명이 살아 있는 도시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 신체 건강, 수명, 삶의 질, 행복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경제적 가치만 따지지 말고 사회적, 환경적, 심미적, 문화적 가치를 따져 녹색과 청색이 어울린 바이오필릭 도시로 가는 길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으로 가는 길의 첫머리에 동천이 하나의 시금석으로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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