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어묵, 피란민 허기 달래며 변신… 부산과 함께한 국민 먹거리 [부산피디아]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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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피디아] 2. 길거리 대표 간식 부산어묵

붕어빵, 군고구마, 호빵.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간식들이다. 그중에서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한입 베어 먹는 어묵은 모두가 인정하는 별미다. 무와 대파를 넣고 팔팔 끓인 국물은 한껏 쪼그라든 몸을 순식간에 덥히고 헛헛해진 속을 달래 준다. 국물에 퉁퉁 불은 어묵을 짭조름한 간장에 찍어 먹으면 배고픔은 저 멀리 달아난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어묵을 맛볼 수 있지만, 어묵이 처음 국내에 들어온 곳은 부산이다. 개항 당시 일본에서 온 ‘가마보코(蒲)’와 ‘오뎅(おでん)’은 ‘부산어묵’으로 재탄생돼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과 애환을 함께했다.

부산어묵은 개항기 일본에서 들어온 가마보코와 오뎅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광복 후 부산 사람들이 가마보코에 흰살생선과 밀가루를 넣어 만들며 점차 부산식 어묵의 모습을 갖춰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과 애환을 함께 하며 전국에 퍼져 나갔다. 정수원 PD bluesky@ 부산어묵은 개항기 일본에서 들어온 가마보코와 오뎅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광복 후 부산 사람들이 가마보코에 흰살생선과 밀가루를 넣어 만들며 점차 부산식 어묵의 모습을 갖춰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과 애환을 함께 하며 전국에 퍼져 나갔다. 정수원 PD bluesky@

■부산어묵의 유래는?

어묵은 한 해 매출 규모가 수천억 원에 달하는 ‘국민 간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 등의 생산실적’에 따르면 2021년 어묵 국내 판매액은 7056억 원이고, 판매량도 22만t에 달한다. 이 중 부산업체가 판매한 어묵은 8만 8408t이다. 전국에 유통되는 어묵 10개 중 4개가 부산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부산어묵은 부산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자 어엿한 지역 대표 먹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부산소비자연맹이 2019년 부산 시민 503명에게 물어보니 부산 대표 상품으로 ‘어묵’(24.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최근 몇 년 새 어묵은 ‘베이커리’ ‘고로케(크로켓)’ 등과 접목돼 맛도 모양도 다채롭게 진화하고 있다. 백화점, 아웃렛, 부산역 등으로 판매 영역도 거침없이 넓혀지는 중이다.

오늘날 부산어묵의 역사는 개항과 함께 일본에서 들어온 가마보코에서 시작한다. 가마보코는 생선 살에 간을 한 뒤 모양을 다듬어 찌거나 굽거나 튀긴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부산 초량에 왜관이 설치돼 많은 일본인이 터를 잡았다.

이들은 찐 어묵인 가마보코와 이를 국물에 담가 만든 요리인 오뎅을 바다 건너에서 들여왔다. 부산에는 전국 최대 규모 어시장이 있어 가마보코와 오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신선한 수산물이 풍부했다.

부산시청의 전신인 부산부청이 1915년에 발간한 〈부평시장 월보〉는 시장 주요 점포 중 가마보코 점포 3곳을 소개하고 있다.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시장〉이라는 책에도 ‘부평시장에서는 쌀, 어묵, 채소, 청과물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당시 시장에서 쌀이나 채소만큼 가마보코가 활발히 거래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가마보코는 엄연히 일본 음식이었고, 가마보코를 만드는 공장과 판매 점포 대부분은 일본인 소유였다.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

“부산어묵 성장 가능성 끌어올려

다양한 형태 소비되도록 노력을”


■‘가마보코’에서 ‘부산어묵’으로

가마보코 공장이 부산 사람 손에 넘어온 건 광복 이후다. 부산어육공업협동조합 김종범 이사는 “일제강점기 부산에 온 일본인들이 공장을 차려 가마보코를 만들었다. 광복 후 그곳에서 일하던 한국 사람들이 시설을 이어받았다. 그러면서 어묵을 튀기거나 흰살생선을 재료로 많이 쓰는 등 가마보코를 한국식 어묵으로 조금씩 바꿔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동광식품 창업주인 이상조 씨가 중구 부평동 시장에서 국내 첫 한국인 어묵 공장을 세웠다. 이어 1950년에는 일본에서 어묵 제조 기술을 배운 박재덕 씨가 영도구 봉래시장 입구에 삼진식품을 설립한다. 미도어묵, 고래사어묵 등 오늘날까지 어묵으로 명성을 떨치며 ‘어묵 종가’로 일컬어지는 지역 업체들이 이때 연이어 탄생했다. 이들은 가마보코와 유사하지만 어육을 기름으로 튀기는 등 점차 부산어묵만의 형태를 만들어 갔다.

어묵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며 전성기를 맞았다. 어묵 업체들은 생선 살 대신 밀가루를 섞어 만든 어묵을 저렴하게 팔았다. 주머니가 가벼운 피란민들은 간편히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어묵을 즐겨 먹었다. 박재덕 창업주의 손자인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는 “할아버지는 창업 당시 오늘날 롯데백화점 광복점 자리에 있던 수산센터에서 생선을 구해 어깨너머로 배웠던 기술로 어묵을 만들어 피란민에게 팔았다”며 “전쟁 당시 부산에 몰려온 피란민이 어묵을 먹으면서 관련 식문화가 꾸준히 축적됐다”고 말했다.

부산어육협동조합 김종범 이사 부산어육협동조합 김종범 이사

“어육 함량 높지만 대부분 수입산

국내 원료 직접 조달 시스템 연구”


■‘부산어묵’ 위상 높이려면

이런 역사성이 있지만 사실 부산어묵은 부산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특산품임을 표시하는 ‘지리적 표시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리적 표시제가 적용된 사례는 ‘대저 토마토’ 등 좁은 지역에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부산’ 같은 광역 단위를 묶는 게 쉽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부산어묵을 보호할 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부산연구원은 2020년에 발표한 ‘부산 어묵 산업 발전방안’에서 '부산이 우리나라 어묵 산업의 원조로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법적 토대를 마련하고, 전문기관이나 조직 지정·운영 등을 통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어묵 업계도 부산어묵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김 이사는 ”부산어묵은 높은 어육 함량으로 품질을 인정받았지만 막상 원료인 어육은 대부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부산어묵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국내에서 원료를 직접 조달하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표도 “부산어묵의 성장 가능성을 끌어올려 다양한 형태로 어묵을 소비할 수 있도록 지역 수산업체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면으로 못다 한 ‘부산피디아 부산어묵’ 이야기는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youtube.com/@TheBusanilbo)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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