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4월의 노래와 상징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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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2019년 김주열 열사 59주기 추모식이 열린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부두. 부산일보DB 2019년 김주열 열사 59주기 추모식이 열린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부두. 부산일보DB

4월에 피고 지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맹골수도 거친 물길에서 하늘의 별이 되었거나 4월혁명의 대열에서 조국의 별이 된 영령들을 생각한다. 쉽게 잊거나 때로 망각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거듭 되새기고 끝끝내 기억하고 일깨우는 기억투쟁은 역사 그 자체다. 예술가란 기억의 파수꾼이다. 시와 소설, 노래나 그림으로 기억을 갈무리하고, 기억투쟁을 통해 비탄과 저항의 역사를 예술운동으로 승화시킨다. 예술적 실천은 현실이나 특정한 사회적 조건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술가들의 미학적 실천은 사회를 재구성하는 근본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사월의 끝자락에서 다시, 4월의 노래를 듣는다. 혁명의 노래는 기억투쟁이자 상징투쟁의 산물이다.

4월혁명을 노래한 대중가요는 혁명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도하거나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현양한다. 특권층의 부정축재와 3·15부정선거를 비판한 ‘사사오입 타령’, 혁명의 열기와 지향을 담은 ‘4·19 행진곡’이 대표적이다.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한복남은 ‘남원땅에 잠들었네’를 작곡했다. 사월의 꽃 김주열을 애도하는 노래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중앙부두 앞바다에 떠오른 시신은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이 노래는 전주에 민중의 뜨거운 함성이 들린다. 간주에는 애국가 선율이 흘러나오며 “아, 주열아, 주열아”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처절하다. 열사의 삶과 죽음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곡이다.

모정을 담은 노래는 4월혁명가요의 특징적인 유형이다. ‘사월의 꽃 한 송이’ ‘어머니는 울지 않으리’ ‘어머니는 안 울련다’가 이 계열에 든다. 대중의 마음을 적셨을 이들 노래는 민주와 자유를 위한 혈탄이었으리라. 쉽사리 잊혔지만 4월혁명가요의 존재는 이색적이다. 상업성을 염두에 둔 상품으로서 음반에 수록되어 유통되었다.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민중적 연대를 추동하는 민중가요와는 사뭇 다르다. 신파조의 가사에다 전형적인 트로트 형식이거나, 함성이나 합창, 애국가, 내레이션처럼 혁명을 환기하는 장치를 동원해도 울림이 깊지 못하다. 혁명을 의례적으로 기념하는 노래에 가깝다.

시대는 노래를 만들고, 노래는 시대를 읽는다. 식민지와 해방, 전쟁과 혁명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노래의 날개 위에 실었던 숱한 예술가들의 상징투쟁을 되새기는 4월이 간다. 곧 모정을 기리는 오월이다. 사월의 꽃들은 덧없이 지고 말았는가. 민주의 제단에 자식을 바친 애끊는 모정을 기억하는가. 데리다에게 애도는 끝이 없는 것, 위로할 수 없는 것, 화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애도의 불가능성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슬픔을 말한다. 기억의 문제다. 애도는 끝났는가.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이 우리 삶에 눈길을 주고 개입하는 것은 그들에게 부여된 역사적 운명이자 시대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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