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못 막는 울타리… 애초부터 스쿨존 보행자 보호 ‘뒷전’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참사 도로 펜스, 충돌 매우 취약
정부 ‘무단횡단 억제 목적’ 명시
차량 방호용은 트럭도 막아 내
하지만 비용 문제로 설치 외면
"비탈 많은 부산 특성 감안했어야"
경찰, 지게차 기사 과실치사 입건

부산 영도구 청학동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된 안전펜스가 외부 충격에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7t짜리 대형 원형 어망실이 보행자용 안전펜스를 부수고 멈춰서 있는 모습. 독자 제공 부산 영도구 청학동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된 안전펜스가 외부 충격에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7t짜리 대형 원형 어망실이 보행자용 안전펜스를 부수고 멈춰서 있는 모습. 독자 제공

10살 초등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영도구 청학동 어린이보호구역 참사(부산일보 5월 1일 자 1면 등 보도)에서 거리에 설치됐던 방호울타리(펜스)는 외부 충격에 무용지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8t 트럭도 거뜬히 견디는 차량용 펜스가 있지만, 지침상 의무가 아닌데다 비싼 가격으로 외면받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일 영도구청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영도구 청학동 등굣길 참사가 발생한 도로에는 총 311m 길이 보행자용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지난해 7월 구청이 펜스 교체 작업을 벌인 256m 구간에 해당했다. 기존의 스테인리스 펜스를 노란색 펜스로 바꿔 어린이보호구역이란 사실을 운전자에게 더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펜스는 강도가 약해 정작 차량 돌진이나 이번 사고와 같은 외부 충격에는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이번 사고에도 내리막길에서 굴러온 1.7t짜리 어망실은 손쉽게 펜스를 무너뜨렸고, 등교하던 보행자 4명과 충돌했다. 1차 충돌 이후 어망실은 왕복 2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반대편 펜스마저 부수고 인도를 침범했다. 반대편에는 보행자가 없었지만, 하마터면 추가적인 피해도 발생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정부 지침에서도 어린이보호구역에 충격을 막아내지 못하는 보행자용 펜스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통합지침’에서는 보호구역 내 시설기준으로 펜스를 제시했는데, ‘차량의 충돌에 견딜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명시했다. 지침에 따르면 지침상 펜스는 보행자의 무단횡단 억제, 인도와 차도의 시각적 분리에 주 목적을 두고 있다.

구청 역시 행안부 지침에 따라 사고가 발생한 도로에 보행자용 펜스를 설치했다는 입장이다. 영도구청 교통과 관계자는 “애초부터 어린이가 길을 걷다 도로로 나가는 일을 막기 위해 펜스를 설치한 것”이라며 “외부 충돌에는 견고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가 규정한 실물충돌시험을 통과해야 취득할 수 있는 SB(Safety Barrier)등급을 받은 펜스가 설치됐다면 2t에 가까운 구조물에 목숨을 잃는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SB등급은 차량용 펜스에 적용되고, 관련 지침에 차량용 펜스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는데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도 지자체가 설치를 주저하는 요소 중 하나다.

차량용 펜스는 안전 강도에 따라 1~9등급으로 나눠지는데, 가장 낮은 강도인 SB1등급은 8t 트럭이 15도 각도에서 시속 55km로 충돌해도 견딜 수 있다. 그만큼 차량용 펜스 재질도 강철이나 알루미늄 등으로 만들어져 평균적으로 보행자용 펜스보다 비싼 편이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직접 나라장터종합쇼핑몰에 등록된 A 업체를 조사해 보니, 1m당 보행자용 펜스는 12만 7000원이었다. 반면 SB4등급을 받은 차량용 펜스는 20만 9000원으로 나타났다. SB4등급은 14t 차량이 15도 각도에서 시속 65km까지 견딜 수 있어 SB1등급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전문가는 비탈길이 많은 부산지역 등굣길의 특수성을 감안한 도로 시설물 설치가 필요하다며, 관련 지침 개선도 수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고 빈도수, 도로 경사도 등을 고려해 특히 위험한 통학로에는 강화된 도로 시설물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교통공단 안전시설부 이환진 차장은 “부산은 산복도로, 꼬부라진 도로 등 도로 여건이 다른 도시에 비해 열악하고 그에 따라 사고 가능성도 크다”며 “모든 어린이보호구역에 차량용 펜스를 설치하는 것보다, 사고 가능성이 높은 곳을 위주로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도로교통공단 안전교육부 최재원 교수도 “차량용 펜스의 경우 지지대가 땅 속 깊숙이 박혀 있어 실제 차량 충돌이 있어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다”며 “법이나 지침을 바꿔서 이번처럼 예외적인 사고도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경찰은 사고 당일 컨테이너 차량에서 화물을 내리던 지게차 기사 1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입건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