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100년이라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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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일본, 폭압적 과거 반성 안 해
교과서와 영토 분쟁 등서
제국주의 위용 소환 행보도
일방적 화해·무조건 공존 어려워
잘못 인정하고 가해 책임 통감할 때
가해자에 대한 용서 고려할 수 있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용인되지 않는 말이 있다. 최근 100년 전 일로 상대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할 수 없다는 누군가의 말이 그러한 말에 해당할 것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크게 잘못된 말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로서는 늘 상대를 용서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고, 간악한 상대라도 인간적인 예우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작동하고 있다. 하나는 상대가 지난 일―100년 전 일은 말할 것도 없이―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전제이다.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고 가해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 설령 피해자라고 할지라도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은 해방 이후 몇 차례 사과를 전달했고, 과거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단속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교과서를 보면, 그들은 과거의 잘못을 맹목적으로 감추고 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시혜 행위로 미화하기까지 한다. 비단 교과서만이 아니다. 영토 분쟁이나 문화유산 등록 과정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폭압적인 과거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큰 야욕을 부리며,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위용을 소환하는 행보까지 서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에게, 일방적인 화해와 무조건적인 공존을 허용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말이다.

다른 하나의 전제는 상대가 위협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은 방어 위주의 자국군을 재편하여, 언제든지 전쟁 수행이 가능한 군대로 만들고자 한다. 또한 국민 중에는 침략의 상징인 욱일기를 노골적으로 동경하는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강력한 일본을 재건을 꿈꾸는 이들마저 등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처럼 일본이 침략 국가로 변화할 수 있다는 위험에 대한 자체 경계심이 매우 느슨해졌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작금의 일본은 과거의 행위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이 속박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폭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일본이야말로 100년 전의 일은 100년 전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100년 전의 일로 인해, 그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거나 그 역사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논란의 발언을 만든 주인공은, 취임 이후 무수한 말실수를 해왔다. 그 실수 중에는 그의 교양을 의심하게 만들고, 그의 진의를 따지게 만들고, 그의 수완을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드는 실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100년 전 발언’만큼은 심각했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의식을 갖추지 못한 그의 본연적 한계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100년 전의 문제가 100년 전의 문제로만 끝났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100년 전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고 다시 재현될 여지마저 있다면, 100년 전의 문제라고 함부로 덮어놓을 수 있을까. 폭력을 저질렀지만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가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용서받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100년의 시간을 함부로 운운하지 않았으면 한다. 100년의 시간은 분명 인간이 경험하기에는 요원한 시간일 수 있지만, 인간이 겪어 온 역사에서는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집중해야 할 일은 100년이 지났으니 따지지 말자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고, 1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찾는 일일 것이다. 아마 발언의 당사자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테니, 철저한 자기 반성에서 이 일은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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