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스승' 없는 시대
논설위원
그저 하루의 이벤트일 뿐일까. 오늘은 스승의 날인데, 갈수록 그 취지가 퇴색하는 느낌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우리나라 교사 중 무려 87%가 사직이나 이직을 고민한다고 한다. 부산 지역은 그 수치가 더 높았다.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는 교사 비율이 91.2%에 달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교사가 기피 직업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 전국 교대와 초등교육 관련 학과의 정시모집 경쟁률은 5년 만에 가장 낮았고, 교대 중퇴생도 4년 새 2.8배 늘었다. 교사 10명 중 3명은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는 통계도 나왔다. 모두가 학령인구 감소와 교권 추락의 여파다.
급격한 사회 변화는 학교 현장에도 예외가 없었다. 성적 지상주의에 따른 줄 세우기, 학생 인권에 대한 무시, 공공연한 뇌물 수수까지 횡행하는 비상식적 시대에서 지금은 반대쪽 극단으로 치닫는 중이다. 학생과 학부모, 동료에 의해 ‘평가’를 받게 된 교사들은 낮은 봉급과 과중한 업무 부담에다 학생 폭력과 학부모 민원 등으로 몇 겹 고통에 시달린다. 일각에선 권력관계가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도 보지만 그 꺾임의 양상이 심각한 건 사실이다. 이제는 학원과 AI가 교사 자리를 대신하는 차원이 다른 변화가 몰려오는 바, 교사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요구하고 있다.
교사가 스승이라 불리던 때가 있었다. 원래 교사와 스승은 같은 의미였는데, 교사는 지식을 전달하고 스승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는 쪽으로 그 의미가 양분된 지 오래다. 스승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자라는 말로 여겨진다. 영화 ‘고독한 스승’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 ‘홀랜드 오퍼스’는 교사가 스승으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과정을 보여 준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 한 명에게 쏟는 애정, 그러면서도 모든 아이들을 동등하게 품는 사랑. 그것이 여전히 감동을 주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이 편찬한 〈이담속찬〉에 이런 속담이 나온다. ‘경전의 스승이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인간의 스승이야 만나기가 어렵다.’ 인간의 스승이란, 책의 내용을 가르치는 일보다 사람다운 인간을 길러 내는 높은 품성의 존재를 뜻한다. 이 시대의 불행은 그런 스승을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데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참어른, 참스승이 없다는 어떤 공허감과도 연결된다. 지금 ‘스승’ 없는 막막한 현실엔 길을 헤쳐 빛을 비추는 큰 존재의 안타까운 부재가 투영돼 있는 것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