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문영 “어떻게든 버티려 했다” 이용관 “돌아오길 기다린다” [위기의 BIFF]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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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BIFF 집행위원장
허문영 “올 영화제까진 치르려… ”
사의 결정적 배경은 체제 전환
업무적으로 누적된 갈등도 한몫

이용관 BIFF 이사장
이용관 “이사장 임기 연연 안 해”
“허 위원장과 공동위원장 건 합의”
사표 수리 않고 복귀 설득 입장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사의를 밝힌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어떻게든 버티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 에둘러 속내를 드러냈다. BIFF ‘공동 위원장’ 체제 전환이 결정적이며 업무적으로 쌓인 문제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BIFF 이용관 이사장과 오석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위원장은 “허 위원장과 ‘공동 위원장’ 선임을 오래전부터 논의했기에 사의를 예상하지 못했다”며 “돌아오길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허 위원장, 내부 문제 암시

허문영 BIFF 집행위원장은 지난 12일 “어떻게든 올해 영화제까지만이라도 치르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며 “결국 이런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영화제 스태프와 많은 분께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밝혔다.

사의 표명에 배경이 있단 걸 암시하면서도 직접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며 “그런 사람은 입을 닫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부디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BIFF에 따르면 허 위원장은 지난 11일 오석근 ACFM 위원장에게 문자로 사의를 전달했다. 오 위원장은 “본인이 ‘여러 가지로 지쳐 있어서 결정을 내렸다’고 포괄적으로 이야기했다”며 “사표는 이사장실 책상 위에 있을 거라 했다”고 밝혔다.

허 위원장은 입을 닫았지만, 사의 표명은 BIFF가 ‘공동 위원장’ 체제로 전환한 게 결정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BIFF는 지난 9일 임시총회를 열어 조종국 영화진흥위원회 전 사무국장을 신임 운영위원장으로 위촉했다.

허 위원장은 9일 임시총회 직전 “결과를 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당시 그는 “(공동 위원장 선임에 대해) 임시총회를 앞두고 말씀드리는 건 별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궁금한 게 있으면 이사장님과 통화해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2일 오후 굳게 닫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실. 이우영 기자 verdad@ 지난 12일 오후 굳게 닫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실. 이우영 기자 verdad@

■외압 아닌 내부 위기

이번 집행위원장 사의는 2014년 ‘다이빙벨’ 사태처럼 외압으로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BIFF 이용관 이사장이 내부 영향력을 키우려다 위기를 불러왔다는 의견이 안팎에서 나온다. 공동 위원장 체제는 허 위원장 힘을 빼고, 이사장 측근인 조 신임 운영위원장에게 주요 권한을 이전하기 때문이다. 공동 위원장은 ‘다이빙벨’ 사태 수습을 위해 2015년 선임된 ‘이용관·강수연’ 체제 이후 없던 사례다.

업무 분담을 명확히 나눈 상태도 아니었다. BIFF 측은 “조 신임 위원장은 법인 운영, 행정, 예산 등을 총괄하게 된다”면서도 “자세한 권한 등은 추후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BIFF 이용관 이사장과 오석근 ACFM 위원장은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이사장은 “허 위원장과 운영위원장 선임을 두고 충분히 대화했고, 필요성에 대해서도 합의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오 위원장도 “허 위원장은 해외를 다니면서 ‘아티스틱 디렉터’ 역할에 충실하고, 실무 행정을 운영위원장이 맡는 방안에 자신도 동의했다”고 했다.

특히 이 이사장은 임기가 끝나는 2026년 이전 조기 퇴진할 의사가 있단 점을 강조했다. 이사장 영향력 강화나 BIFF 사유화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허문영, 오석근, 조종국 등 앞으로 잘할 수 있는 후배들로 구성해 제대로 물려줬으면 했다”며 “가능한 임기를 안 채우고 쉬고 싶다는 말도 누누이 해왔다”고 밝혔다.

조 신임 운영위원장 소통 문제와 자격 논란에 대한 해명도 나왔다. 이 이사장은 “조 위원장과 굉장히 가까운 건 사실인데 그렇게 치면 허 위원장과도 수십 년 동안 가까운 사이”라며 “오석근 위원장처럼 BIFF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이라 모셔 온 것”이라 했다. 이어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영상위원회 근무할 때 부산 영화인들과 대화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말은 있다”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다짐을 받았고, 영화제가 세계로 나아가려면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허 위원장 복귀는?

영화계 안팎에서는 허 위원장 사의가 공동 위원장 체제 전환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입을 닫는 게 맞다”고 말한 만큼 내부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든 버텼다”고 언급했듯 예전부터 쌓인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올 3월 인사 이후 BIFF 전 사무국장이 사표를 낸 것처럼 내부 문제에 환멸을 느낀 것이란 말도 나온다.

올해 개막을 5개월 앞둔 BIFF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허 위원장 복귀가 최선이라는 의견이 많다. 허 위원장은 2021년부터 영화제를 제대로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이사장과 오 위원장 모두 ‘허 위원장과 대화하고 복귀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만큼 영화제를 다시 이끌게 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허 위원장에게 지난 12일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이 이사장 의사를 전달했지만, 그는 그 부분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영화계 등에서 복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재차 묻자 “생각해 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이미 떠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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