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운대 그린시티 열배관·난방비 ‘일촉즉발’ [이슈 추적, 왜?]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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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 값 급등에 연료비 거액 보전
지하 수송관 보수 기금 고갈 우려
올해 148억 중 120억 지출하면
‘지뢰밭’ 노후 배관 관리 큰 구멍
보전 없으면 주민에 난방비 폭탄

사진은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 그린시티(신시가지) 전경. 부산일보DB 사진은 부산 해운대구 좌동 해운대 그린시티(신시가지) 전경. 부산일보DB

부산 해운대구 그린시티의 노후 열 수송관 보수·교체에 쓰일 수백억 원대의 집단에너지시설 기금이 고갈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에너지대란으로 연료비 인상분을 보전하는 데 대거 사용됐기 때문이다. 노후 열 수송관은 주민 안전사고와도 직결돼 기금 바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부산시에 따르면 해운대구 그린시티 집단에너지시설 기금 148억 원 중 올해 추가 연료비 지원 명목으로 120억 원이 지출될 예정이다.

LNG(액화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부족해진 지역난방 운영비를 충당하려는 것이다. 시는 최근 LNG 값이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해 기존 요금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시가 편성한 대로 올해 120억 원이 지출될 경우, 기금 최종 잔액은 17억 원가량인 예상 세입을 더해도 45억 원에 그친다. 이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기금이 100억 원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최근 10년 중 처음이다.



기금은 지난해부터 급감했다. 잔액 323억 원 중 지난해 연료비 지원 명목으로 190억 원이 쓰인 데 이어 올해도 120억 원이 같은 명목으로 편성됐다. 내년에도 LNG값이 안정되지 않거나 기존 운영비가 늘지 않으면 최소 수십억 원의 연료비가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 기금이 동나는 것을 넘어 ‘마이너스 기금’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 기금의 주요 사용처가 집단에너지 핵심 설비의 유지·보수라는 점이다. 기금은 노후된 설비의 교체·보수 등 대규모 공사에 대비해 적립돼 왔다. 매년 누수, 파열이 발생하면 기존 특별회계를 통해 수선이 이뤄지지만, 유지·보수에 큰 돈이 들어가야 할 경우에는 기금이 쓰이는 식이다. 시에 따르면 과거 용역을 진행한 결과 그린시티의 노후 설비를 정비하는 데 약 500억 원 정도의 기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매설한 지 27년이 된 그린시티 노후 열 수송관은 내구 연한에 거의 다다른 상태다. 제때 보수·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형 안전사고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열 손실 비율도 덩달아 확대된다. 해운대구 그린시티 집단에너지시설은 4만 4000여 세대에 지역난방을 공급한다.

기금 고갈 위기는 최근 그린시티에서 벌어진 열 요금 인상 논란(부산일보 지난 2월 7일 자 10면 등 보도)의 연장선이다. 열 요금 인상을 둘러싼 시와 주민 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바람에 부족해진 운영비를 기금으로 메운 것이다. 향후 기금까지 고갈돼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린시티 전체에 에너지대란이 닥칠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시가 약속과 달리 열 요금 인상의 책임을 모두 떠넘긴 데 이어, 기금도 주요 운용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하면서 제대로 동의를 얻지 않았다고 반발한다. 최근 불거진 ‘자문위원회 패싱’ 논란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한다. 부산시의회 임말숙(해운대2) 의원은 최근 시정질문에서 지난해 자문위를 먼저 거치지 않고 연료비 지원에 기금이 집행된 점을 꼬집기도 했다.

시는 당시 지방선거로 신규 자문위 구성이 지연돼 추경 일정상 기금을 집행한 후 자문위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대외 연료비 급등에도 요금 인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기금 사용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시 미래에너지산업과 관계자는 “그린시티 집단에너지시설은 주민 요금으로 운영된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대란 상황에서 기존 수준의 요금으로는 운영비를 충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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