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 월급·고된 업무에…” 의사 보건소장 찾기 ‘하늘의 별 따기’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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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8300만 원 책정한 거제시
지원자 없어 보건소장 재공모
의사 구하기엔 근무 조건 열악
재공모 불발 땐 공무원 중 임용
경남 21곳 중 의사 출신 8곳뿐
산청의료원 의사 5수 만에 구해

경남의 상당수 기초자치단체가 의사들의 지방 근무 기피 때문에 의사 보건소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경남 거제시보건소 전경. 부산일보DB 경남의 상당수 기초자치단체가 의사들의 지방 근무 기피 때문에 의사 보건소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경남 거제시보건소 전경. 부산일보DB

“3억 6000만 원을 준다고 해도 안 오는데, 8300만 원에 오겠어요? 안 와요.”

전문 의료 인력의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의 중소도시 의료공백이 심화하는 가운데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보건소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관련법에 따라 전문의를 임용해야 하지만 낮은 연봉과 열악한 근무 환경 탓에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민관 의료체계의 연결 고리로 보건소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자칫 지자체 방역망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남 거제시는 24일 "지난달 26일부터 보건소장 1차 공모를 진행했지만 응시자가 없었다. 오는 29일~다음 달 2일 재공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직급은 4급 상당이며, 최초 임용 기간 2년에 5년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연봉은 지방공무원 보수 규정에 따라 개방형 4호 하한액의 130%인 8300만 원 상당으로 책정했다. 거제시는 자체 선발위원회를 구성해 서류심사와 면접,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내달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거제시가 계획대로 임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행 지역보건법 시행령에는 의사 면허가 있어야 보건소장이 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2차례 이상 공모를 진행했는데도 지원자가 없으면 간호·의무·의료기술·보건진료 분야 공무원을 임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등 감염병 확산과 고령 인구 증가로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보건소장의 전문성에 대한 주민 기대도 커졌다. 그러나 지방에서 의사 소장을 영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에 업무 강도는 높기 때문이다. 보건소장은 지역 보건 업무를 총괄한다. 환자 진료는 물론, 행정 업무도 봐야 한다. 일반 병의원에 비해 업무량도 많고 부담도 크지만, 급여는 공무원 임금 수준에 그친다. 억대 연봉을 받는 의사 입장에선 굳이 지원할 이유가 없다. 여기에 지방의 교육·문화·생활 인프라는 수도권에 비해 낙후됐다는 인식도 강하다.

인구 20만 명이 넘는 거제시도 마찬가지다. 2021년에도 의사 출신이던 전 보건소장 후임을 선발하려고 수차례 공모를 진행했지만 여의치 않아 결국 서기관급 보건직 공무원을 소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259개 보건소 가운데 의사 소장이 있는 곳은 109개(42%)로 절반이 안 된다. 경남의 18개 시군 21개 보건소 중 의사 소장이 있는 곳은 창원시, 마산시, 진주시, 김해시, 밀양시, 고성군, 하동군, 산청군의 8곳에 불과하다. 일부 지역은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공석으로 두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원자가 없어 발생하는 공백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선 ‘보건소장은 의사’로 규정한 관련법을 개정하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국회가 나서 지역보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여야에서 각각 ‘지역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핵심은 보건소장의 자격 요건을 치과의사·한의사·간호사 면허가 있는 사람과 약사 등 보건 관련 전문인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반면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보건소장은 의료 전문성을 바탕으로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지자체도 전문의를 끌어올 추가적인 유인책 등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앞선 산청군보건의료원 사례를 짚으며 “억대 연봉을 약속해도 일단 지방은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막연한 사명감이나 인정에 호소해선 안된다”며 “급여는 기본이고 주거 생활 등 지원자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산청군의료원은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 전역 이후 지원자가 없어 1년째 공석이던 내과 의사를 5수 끝에 지난 19일 채용했다. 합격자는 충북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전문의다. 그는 4차 공모에 합격했지만, 일신상의 이유로 포기했다. 산청군은 당사자를 찾아가 설득한 끝에 겨우 승낙을 받아냈다. 연봉은 3억 6000만 원, 근무 조건은 주 5일, 하루 8시간이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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