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 재량에 맡긴 피해자 알 권리, 의무 통지 대상으로 법 바꿔야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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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신청 없으면 깜깜이 정보
수사 진행 통지는 애매하게 규정
형사소송법 바꿔 통지 의무화해야

부산시 범죄 피해자 애프터케어 토론회가 25일 부산시의회 중회의실에서 서지연 시의원 주최롤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시 범죄 피해자 애프터케어 토론회가 25일 부산시의회 중회의실에서 서지연 시의원 주최롤 열렸다. 정대현 기자 jhyun@

범죄 피해자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제3자’로 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형사소송법 등 현행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의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사건 관련 사실을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수사 진행 상황 등 핵심 사안은 담당자의 재량이 아니라 의무 통지 대상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 형사소송법 제259조의2에는 ‘검사는 범죄로 인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의 신청이 있을 때에는 사건의 공소 제기 여부, 공판의 일시·장소, 재판 결과, 피의자의 구속·석방 등 구금에 관한 사실 등을 신속하게 통지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고소·고발인이 아닌 범죄 피해자의 경우 직접 수사기관에 신청할 때에만 제한적으로 통지가 이뤄진다. 또 수사 진행 상황이나 사건 처분 결과, 피의자 형 집행의 구체적 사실 등 피해자에게 정말 중요한 사항은 통지 내용에서 빠진다. 현행법만으로는 피해자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피해자가 굳이 신청하지 않더라도 사건에 관한 사실을 피해자에게 의무적으로 알려주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외적으로 피해자나 피고인 등의 명예, 사생활 비밀, 신체적 안전 등을 위협하거나, 피해자가 거부할 경우에만 통지 의무를 제외하자는 것이다.

또 수사 진행 상황이나 사건 처분 결과, 피고인의 형 집행 등 핵심 내용을 통지 의무 규정으로 넣자는 지적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가 피고인의 거짓 진술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처음부터 성범죄 의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피의자 진술이나 수사 진행 상황 등에 접근할 권한이 없어 주장을 묵살당했다.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성범죄 여부를 다툴 수 있었고, 검찰은 DNA 재감정 끝에 성범죄 혐의를 추가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이를 통해 보복 범죄 우려로부터 한층 자유로워질 수 있다. 법무부 역시 지난해 이 같은 내용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을 권고했다.

특히 피해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수사 진행 상황의 경우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훈령이나 법규로만 애매하게 규정돼 있다. 검사나 사법경찰관은 수사 진행 상황을 사건 관계인에게 ‘적절히’ 통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만 정해져 있다. 전적으로 수사 담당자 재량에 맡겨둔 셈인데, 통지 제도 자체가 허울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유명무실한 정보공개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정보공개법은 피해자가 원하는 정보를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나 수사 과정에 지장을 주는 일부 경우에만 정보를 비공개하도록 규정한다.

현실에서는 법원이나 수사기관의 보수적 분위기 탓에 피해자의 열람·등사 청구권은 늘 문턱에서 가로막히고 만다. 수사 기록은커녕 피고인의 진술 등 피해자 권리 보호에 필수적인 자료도 얻기 힘들다. 사건에 관한 정보 열람을 신청했더니 피해자가 작성했던 고소장이나 경찰에서 했던 피해자 진술만 공개 가능한 자료로 돌아왔다는 웃지 못할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벌어진다.

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의 천호성 변호사는 “대다수 피해자가 원하는 건 수사 진행 상황이나 수사 기록, 피고인의 진술 등이다. 피해자가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다”라며 “피고인의 방어권 보호나 국가소추주의 같은 이상적 가치를 우선시한 나머지 피해자의 권리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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