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반도체, ‘조선 종이’ 스스로 만든 장인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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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학기술사/이정

<조선의 과학기술사>. 푸른역사 제공 <조선의 과학기술사>. 푸른역사 제공

<조선의 과학기술사>는 전복적인 새로운 관점의 책이다. 과학기술의 역사는, 코페르니쿠스나 뉴튼 등의 천재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편리한 과학기술적 삶은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의 놀라운 이론적 성과보다 이름 모를 수많은 과학기술인의 사려 깊은 문제 해결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조선 종이’ ‘조선의 제지술’을 해부한다. 질 좋은 조선 종이는 숫제 600년 전 ‘조선 반도체’ 격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의 닥종이는 최첨단 제품이었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주요 조공품으로 막대한 양의 종이를 요구했다. 전체 방물 예산 3분의 1에 달할 때도 있었다. 1425년 명나라는 조선 종이에 현혹돼 아예 세종에게 ‘종이 만드는 방법을 적은 글’을 바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조선 종이를 복제할 수 없었다. 조선 종이는 그만큼 독보적이었다.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들은 정해진 양보다 많은 종이를 요구해 사욕을 채우기도 했으며, 동기창을 비롯한 중국의 유명 서화가들은 조선 종이에 글씨나 그림을 남겼다.

왜 조선 종이는 뛰어났을까. 중국은 대나무 종이가 주류였고, 일본은 여러 나무껍질 원료를 지역별로 다양화했다. 우리만이 유일하고도 독특하게도 닥나무 원료에 천착했던 것이다. 그것이 10세기 전후였는데 고려시대 닥종이가 코리아의 이름을 세계에 떨치기 시작했으며 조선에 들어와 더욱 섬세한 제지술로 다듬어졌다.

종이 제조의 비법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이 도침(搗砧)이다. 도침은 일단 제조한 종이를 쌓아놓고 다듬이질하듯 두드리는 마무리 과정이다. 조선만이 유일하게 구사한 빼어난 제지 기술이다. 도침을 거친 종이는 광택, 밀도, 먹의 스밈, 방수 효과 등 품질에서 대단히 뛰어났다.

조선 종이를 만든 도침, 사물의 법칙은 관료들이 기획한 관영 생산 체제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제지 장인들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 관점이다. 그것은 뚜렷한 목소리의 완성된 글로 표현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역사에서 누락된 채로 흘러왔다는 것이다. ‘조선 제지 장인의 사물적 기지’는 차라리 그들 자신의 언어보다는 그들 자신의 사물에 의해 구성되어가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양상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언어로 기록되지 않은 그 사물적 지혜는 창의적인 매일의 실행과 유지보수를 통해 실현돼 왔다. ‘장인과 닥나무가 함께 만든 역사’가 조선 과학기술사였다는 것이다.

도침뿐만이 아니다. 그것과 더불어 조선 종이에서 뺄 수 없는 기술이 휴지(休紙)와 환지(還紙)다. 한 번 쓴 ‘휴지’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돌아온 종이 ‘환지’가 되어 신발 삿갓 갑옷뿐 아니라 가마 안의 요강으로 다시 태어났다. 환지는 ‘글을 남기지 않은 장인들이 사물과 끈기 있는 대화를 통해 얻어낸 새로운 과학기술적 성공’이라는 것이다. 휴지와 환지는 ‘인자한 왕’과 ‘청렴한 관료’라는 이상을 실현할 기술이자 도구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름 없는 장인들의 일상적 기술, 사물적 기술을 통해 실현됐다는 것이다. 닥나무와 같은 사물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역사 속에서 힘을 행사해왔고, 장인들은 100여 년이 걸린 관료들과의 협상을 이끌어냄으로써 조선 행정 체제를 진화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지은이는 근대 전환기에 ‘닥나무 사물연대’가 있었다고 한다. 집을 떠나고 유랑하고 먼길을 떠나고 하면서도 관련 장인들이 공장 중심으로 뭉치지 않았으나 조선 제지는 스스로 엄청난 대량 생산 능력을 가지는 데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를 지은이는 ‘닥나무 사물연대’라고 표현한다. 공장 중심의 유럽 산업혁명과는 아주 다른 방식의 길을 걸었으나 비슷한 목적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과학기술사라는 것이다. 이정 지음/푸른역사/404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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