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한국 청소년 축구의 좋은 추억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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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현철 독자여론부장

뛰어난 조직력·‘선 수비, 후 역습’ 전략
두 대회 연속 ‘4강 진출’ 대기록 세워
세계적 스타 대거 배출 ‘미니 월드컵’
한국 선수, EPL 등 해외 진출 청신호
1983년 6월 ‘멕시코 4강 신화’ 떠올라
당시 현지 언론들, ‘붉은악마’로 칭송

김은중 감독이 이끄는 한국 20세 이하(U-20) 남자 축구 대표팀이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로 2회 연속 4강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해 축구 팬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했다. 김은중호는 꿈에도 바랐던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청소년 축구는 두 대회 연속 4강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걸출한 스타급 선수가 없었던 한국 대표팀은 이번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뛰어난 조직력과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을 앞세워 강호들을 차례로 누르고 지난 폴란드 대회 준우승에 이어 또 한번 기적을 일궈 낸 것이다.

FIFA U-20 월드컵은 그동안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비롯해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티에리 앙리(프랑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폴 포그바(프랑스), 엘링 홀란(노르웨이) 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대거 배출한 대회이다. 아시아 축구사에서도 FIFA U-20 월드컵에서 결승에 오른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1981년 호주 대회의 카타르, 1999년 나이지리아 대회의 일본 등 세 나라뿐이다.


한국 청소년 축구가 이처럼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현 20세 이하 월드컵) 때부터이다. 스파르타식 훈련법을 구사한 박종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한국 청소년 대표팀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이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창조했다.

한국 대표팀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완패했다. 2차전 상대는 당시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된 홈팀 멕시코였다. 따라서 조별리그 탈락이 예상됐다. 하지만 종료 직전 신연호가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트려 2-1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한국 선수들은 멕시코전 승리를 계기로 한층 기세가 올랐다.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호주였다. 이번엔 김종건과 김종부가 2골을 합작해 호주를 2-1로 물리쳤다. 한국이 청소년 대회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오른 것이다. 비록 청소년 대회였지만 ‘미니 월드컵’으로 불릴 만큼 FIFA가 인정하는 권위 있는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자 온 국민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대망의 8강전 한국-우루과이 경기가 벌어진 1983년 6월 11일.

온 국민은 하나같이 이 경기 중계 방송을 시청하고 청취하기 위해 TV와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았고, 경기가 펼쳐진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감격적인 승전보가 전해지길 기원했다. 팽팽한 접전 끝에 전후반을 1-1로 마친 한국 대표팀은 연장 전반 결승골을 뽑았다. 김종부가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한 크로스를 신연호가 득점으로 연결해 사상 최초의 4강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4강전에서 브라질에 1-2로 석패하고, 3·4위전에서 폴란드에 1-2로 역전패해 결국 4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4강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전 국민에게 처음으로 안겨 준 ‘대반란’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준결승 무대까지 오른 한국 대표팀을 ‘붉은악마’로 불렀고, 이때부터 ‘붉은악마’가 한국 대표팀과 응원단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당초 한국은 멕시코 세계청소년대회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2년 11월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이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고 주심을 집단 폭행하는 바람에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북한이 2년간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 최종예선에 올랐던 북한 대표팀은 출전할 수 없게 됐고, 대신 3위였던 한국이 참가하게 됐다. 한국은 북한을 대신해 출전한 최종예선에서 우승하며 극적으로 ‘멕시코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2019년 폴란드 U-20 월드컵에선 ‘깜짝 준우승’이라는 기적을 이룩했다. 한국 남자 축구 사상 최초로 FIFA가 주관한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정정용 감독이 이끈 한국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2-1로 꺾었고, 16강 일본전, 8강 세네갈전, 4강 에콰도르전을 승승장구하며 결승 무대를 밟았다. 비록 우크라이나에 1-3으로 패해 아쉽게 우승은 놓쳤지만 이강인은 대회 최우수상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사령탑인 정 감독은 매 경기 뛰어난 용병술을 발휘하며 일약 ‘스타 지도자’로 발돋움했다.

이강인은 현재 스페인 라리가에서도 마요르카의 에이스로 우뚝섰고, 라리가 최고의 드리블러라는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일 라요 바예카노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한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해 6골 6도움으로 올 시즌을 마친 이강인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에서 꾸준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byunhc@busan.com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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