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마음의 지옥 / 정성욱(1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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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철 부처 되려고 구름 위에 앉은 선방(禪房), 화두 들고 가부좌를 튼다. 길고양이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 돌리다 입승(入繩)의 죽비가 사정없이 어깨를 내리친다. 몸뚱이가 움찔하고 세상이 움찔하는 사이 귀를 때리는 큰스님의 할(喝). 습(習)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느냐 지옥에 가고 싶으냐. 지옥이 따로 있나요 여기가 바로 지옥인데요. 엉덩이에 달라붙은 물집 다 아물면 부처가 되나요 여름꽃이 다 지면 어디 부처가 되나요. 온종일 목구멍 속으로 반문하다가 서산 붉은 햇살이 문지방을 적시도록 끓어오르는 번뇌의 불길, 마음이 곧 부처라는 소리를 수천 번도 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도로아미타불. 끝내 화두를 놓고 선방 문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 웹진 문예지 〈같이가는 기분〉 2023년 여름호 중에서

사찰에선 여름에 템플스테이를 연다. 지친 현대인들이 속세를 잠시 벗어나 화두를 잡고 명상의 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인데 시인도 ‘여름 한 철 부처 되려고’ 선방에 앉았나 보다. 지난 수 십 년간을 살아온 이들에겐 누구나 마음의 지옥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는가. 템플스테이가 아무리 현대인들에게 맞춘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속가의 사람들이 견디기엔 어렵다. 시인도 그만 선방문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입승의 죽비를 맞았고 큰스님의 할도 들었으니, 도로아미타불은 아닐 것이다. 마음에 있는 지옥을 부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 뿐. 사찰에 가진 못하더라도 올여름엔 마음에 지옥 대신 선방을 한 채 지어보자.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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