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젠 떠나야 할 때가 됐나 봅니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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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식 경제 문화 파트장

BIFF, ‘다이빙 벨’ 사태 후 또 위기
안팎 반대에도 운영위원장 임명 강행
이사장 욕심이 ‘위기의 BIFF’ 만든 셈
영화인들 '이용관 즉각 퇴진’ 목소리
부산국제영화제 신뢰 되찾는 건
이 이사장 앞으로의 행보에 달려

○○○ 집행위원장 선임(2인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 이사장 사퇴→○○○ 새 이사장 위촉(임명).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했을 듯싶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얘기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2인 공동위원장(집행위원장 1인·운영위원장 1인) 체제로의 전환, 조종국 운영위원장의 등장,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라는 돌출 변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28회 영화제를 5개월여 앞두고, BIFF가 격랑에 휩싸였다.


1996년 출범한 BIFF가 2014년 영화 ‘다이빙 벨’ 사태로 인해 위기를 겪은 후, 또 한 번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다. 앞의 위기가 밖(정치적인 해석)에서 야기됐다면, 이번 위기는 안에서 야기됐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이번 사태엔 이용관 이사장이 한가운데 있다. 이 이사장이 BIFF 안팎의 반대에도 조종국 운영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요, 핵심이다.

지난 5월 9일 열린 임시 총회에서 운영위원장직 신설만 논의하고, 추후 후보 등을 추천받아 적절한 사람을 임명했으면 이렇게까지는 갈등이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조 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BIFF 조직 내 강한 반대도 뭉개버리고 그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녹취록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날 열린 이사회와 임시 총회에서 공동 위원장(집행위원장, 운영위원장) 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이 잇따랐다. 이사회에 참석한 한 이사는 “두 사람의 (공동)위원장을 두는 게 과연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새 체제의 필요성에 의문을 드러냈을 정도다. 하지만 이 또한 뭉개졌다.

논란이 된 운영위원장 신설은 이미 2018년 구성된 부산영화제 ‘BIFF비전2040특별위원회’를 통해 제안된 내용이었다고 이 이사장 측은 항변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특별위원회는 2018년 이용관 이사장, 전양준 당시 집행위원장이 BIFF 이사회 내에 만든 조직이었다. 특별위원회가 제안한 내용 역시 BIFF의 중장기적(비전2040) 추진 방향일 뿐, 굳이 반대 목소리를 뭉개면서까지 급하게 밀어붙일 성격이 아니었다. 결국 이 이사장의 지나친 자기 욕심, 자기 사람 챙기기가 지금의 BIFF 사태를 만든 셈이다.

무엇보다 집행위원장이 있는데도 직제에 없는 운영위원장직을 별도로 신설해 최측근을 급하게 임명한 것은 자기 욕심이랄 수밖에 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령 이게 BIFF 미래를 위한 충정이었다 할지라도, 이는 자기 독단이고 자기 욕심일 뿐이다. 이를 영화인들은 BIFF의 사유화라 보았고, 분노한 것이다.

BIFF 사태가 한 달을 훌쩍 넘기고 있지만, 진정 기미는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사장과 영화인들 사이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조 운영위원장 즉시 사퇴를 넘어 이제는 이 이사장 즉각 퇴진’으로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영화제 끝난 후 사퇴’라는 이 이사장의 말도 이젠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오늘의 BIFF가 있기까지 이 이사장의 헌신을 모르진 않는다. 그는 BIFF의 상징적 존재다. 하지만 여기까지여야 한다. 본인 입으로 “2026년 1월까지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중간에 물러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번 사태에 궁극의 책임을 지고 주저 없이 물러나는 게 맞다. 더 이상 조건을 달면 궁색해진다. 그가 결단코 BIFF를 사랑한다면 말이다.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BIFF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오는 26일로 예정된 총회에서 조종국 해임안이 통과된다면, 그 칼끝은 재차 이 이사장을 향할 것이다. 그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어도 매우 시끄러울 것이다. 그땐 이미 늦었다. BIFF를 사랑한다는 말조차 무색해질 것이다.

BIFF 출범 14년째, 김동호-이용관 공동 집행위원장 체제였을 때다. 김 위원장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젠 떠나야 할 때가 됐나 봅니다”라고. 그는 이듬해(2010년) 초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서 말이다.

이번 참에 BIFF는 쇄신해야 한다. 이사장이나 집행위원장 등 임원의 역할은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 무엇보다 조직에 대한 진단과 재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인적 쇄신, 조직 개편, 체질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BIFF 조직은 30년 가까이 창립 멤버 중심으로 운영됐다. 국내외 다른 영화제와 달리 대대적인 물갈이나 세대교체가 진행된 적도 없다. 이 때문에 ‘끼리끼리 문화’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과 얼마나 잘 소통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처절한 자기반성도 있어야 한다.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최근 국내 몇몇 영화제가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 일각에선 BIFF도 이렇게 될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런 일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BIFF가 신뢰를 되찾는다면 말이다. 그 시작은 이 이사장의 앞으로의 행보에 달렸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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